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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 팝 음악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2000년대 힙합

2012.06.22


횟수를 더해갈수록 매번 더 큰 놀라움을 선사하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7의 주인공 에미넴은 시대를 관통하며 힙합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입니다. 힙합 음악의 융성기였던 1990년대가 에미넴의 등장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면, 2000년대의 전체적인 힙합 씬을 리드머의 편집장인 강일권님의 글을 통해 돌아보며 에미넴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팝 음악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새 천 년의 힙합 신, 그 중심에 선 에미넴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가 음악적 완성도와 다양성 면에서 ‘힙합의 황금기(Golden Age)’라 일컫는 1990년대는 에미넴이라는 가공할 랩 괴물의 등장과 함께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어진 힙합 신의 새 천 년은 더욱 진한 장밋빛으로 물들어갔다. 힙합음악이 미 대중음악 판의 인기있는 장르에서 팝 음악계 전반을 지배하는 하나의 흐름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힙합 신은 소울풀한 샘플링(Sampling)과 루핑의 미학, 그리고 정박의 둔탁한 붐뱁(Boom-Bap) 비트로 대표됐던 90년대보다 사운드와 스타일 면에서 굉장히 다양화가 이루어졌던 시기다. 4분의 3박자가 주를 이루던 비트는 변칙적으로 쪼개지기 시작했고, 기존에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됐던 일렉트로니카, 하우스 음악과 결합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진정성 면에서 무시당하던 팝-랩(Pop-Rap)이 제도권 안에 진입하는 등, 여러모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한편으로 예전 스타일을 고수하거나 끊임없이 실험을 감행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운집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 역시 왕성하게 돌아가면서 양질의 결과물을 계속 쏟아냈다. 흡사 제다이들이 염원하는 ‘포스의 균형’이 이루어진 광경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였다.


비트 마에스트로 닥터 드레의 2001, 새 천년 힙합 신의 서막을 열다

새 천 년 힙합 신의 화려한 서막을 연건 바로 닥터 드레(Dr.Dre)의 두 번째 정규앨범 2001이었다. 음악계에 큰 파문을 몰고 왔던 걸작 The Chronic이후, 약 7년 만에 발표된 이 앨범은 닥터 드레가 일전에 쥐-펑크(G-Funk)라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선보여 세계 음악 팬을 충격에 빠트렸듯이 바람직하게 진일보한 웨스트코스트 힙합 스타일과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놀라운 사운드로 다시 한 번 음악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데스로우(Death Row)를 나와 독자적인 레이블 애프터매스(Aftermath)를 설립하고 새로운 사운드의 개발을 위한 과도기를 거쳐 에미넴의 The Slim Shady LP와 이 앨범으로 다시 왕좌를 탈환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두 앨범으로 촉발된 닥터 드레 사단의 폭격은 에미넴의 세 번째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와 피프티 센트(50 Cent)의 첫 번째 정규앨범 Get Rich or Die Tryin'으로 이어지며 정점을 찍는다. 2000년대 초반의 힙합 씬을 논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 두 작품을 간단히 살피고 넘어가 보자.


닥터 드레 사단의 융단 폭격, 그 중심에 있던 두 장의 앨범

에미넴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국 힙합 신에서조차 ‘사이코’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그의 가사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랩 실력과 기가막힌 스토리텔링 능력을 바탕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았는데, 이 앨범에서는 삶과 자신을 돌아보는 좀 더 진중한 자세가 더해지면서 완전체에 가까운 모습을 선보여 다시 한번 넋을 빼놓았다. 특히, ‘Stan’에서 에미넴이 보여준 현장감 넘치는 전개와 극적 반전은 오늘날까지도 평단과 힙합 팬들이 회자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본작은 RIAA (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 미국레코드협회)로부터 발매 11년 만에 다이아몬드(Diamond/필자 주: 미국 내에서 물리적인 음반으로 천만 장 이상 팔린 레코드) 인증을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다.
 


그런가 하면, 언더그라운드에서 악명(?)을 떨치다가 닥터 드레와 에미넴의 눈에 띄어 메이저에서 데뷔하게 된 피프티 센트(50 Cent)의 이 앨범 역시 에미넴의 작품 못지않게 상당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90년대 중반 이후, 주류시장에서 그 영향력이 사라지다시피 했던 갱스터 판타지를 다시금 화두로 삼았던, 21세기 갱스터 랩의 시작이자 결정판이었다. 그는 실제 총격을 당했던 일화를 비롯한 실화와 허구를 오가는 갱스터 로망을 연출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클럽과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음악을 곁들이며 대중과 접점까지 이루는 데 성공했다.

 

새 천 년 힙합 신의 또 다른 주역들

닥터 드레 사단과 더불어 새 천 년 힙합 신의 시작을 이끈 대표적인 이들로는 제이-지(Jay-Z), 넵튠즈(Neptunes), 아웃캐스트(Outkast), 릴 웨인(Lil Wayne),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제이-지는 거리에 기반한 하드코어 랩퍼로 시작하여 힙합 거물이 되는 계기를 마련한 클래식 The Blueprint를 발표했으며, 90년대에는 보조 프로듀서로 간간이 앨범에 참여해오던 넵튠즈는 특유의 미니멀한 비트를 완성하여 그들의 랩 페르소나인 클립스(Clipse)를 통해 선보이며 한동안 신의 트렌드를 선도했다. 

또한, 데뷔앨범 이후, 충격적일 정도로 파격적인 하이브리드 힙합을 선보여오던 애틀랜타의 두 기인 아웃캐스트는 평단으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은 Stankonia와 Speakerboxxx/The Love Below 등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고(필자 주: Speakerboxxx/The Love Below는 에미넴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저 인기 좀 있는 랩퍼에서 어느 순간 또 다른 랩 괴물로 성장한 릴 웨인은 Tha Carter 시리즈와 믹스테잎을 통해 신에서 가장 바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트렌드를 주도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만한 앨범으로는 제이-지의 The Blueprint와 칸예 웨스트의 The Late Registration를 들 수 있다.


샘플링 작법의 판도를 바꾼 클래식 Jay-Z의 Blueprint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90년대부터 차곡차곡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오던 제이-지는 바로 이 앨범을 통해 ‘클래식’을 보유한 힙합 뮤지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 부분은 앨범의 프로덕션 절반을 (당시로써는) 신예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눈에 띠었던 인물이 칸예 웨스트였다. 칸예는 옛 선배들의 소울 샘플링에 기반하면서도 특유의 세련된 사운드로 마무리한 비트를 제공하며, 이미 다양한 스타일을 떡 주무르듯 연출하던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와 함께 본작의 완성도를 책임졌다. 이미 랩퍼로서 재능에 있어서는 더 증명할 필요가 없었던 제이-지는 그의 커리어 최고의 비트로 앨범을 꾸림으로써 새 천 년을 여는 또 한 명의 힙합 아이콘이 되었으며, 오늘날 힙합계의 거물이 되는 초석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힙합 스케일 확장의 효시가 된 작품 Kanye West의 The Late Registration

The Blueprint를 통해 일약 주목받는 프로듀서로 부상했던 칸예 웨스트는 데뷔앨범 The College Dropout에서 랩퍼 겸업을 선언함과 동시에 기존 샘플링 작법의 기본적인 룰은 고수하되 보컬 샘플의 피치를 잔뜩 올리는 특유의 작법으로 새로운 한 획을 긋기에 이른다. 이후, 칸예 웨스트는 오케스트라 스트링 세션을 비롯한 리얼 연주와 디지털 샘플링의 조합으로 무장하고 이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사운드와 곡의 구성, 그리고 전개를 팝적인 시선에서 접근하는 파격을 시도하면서 본작은 평단과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앨범 이후, 음악적으로 힙합의 전형성에서 탈피한 음반들이 본격적으로 주류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만큼 오늘날 힙합 음악의 스케일 확장의 효시가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막 12년여가 흐른 2000년대의 힙합 신은 1990년대부터 활약해오던 진짜배기 베테랑들과 제이콜(J. Cole), 빅 크릿(Big K.R.I.T), 왈레이(Wale), 커런시(Currensy), 위즈 칼리파(Wiz Khalifa),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등등, 앞으로 신을 책임질 신진 세력이 균형을 이루며 매우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서두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들 대부분의 인기와 영향력은 단순히 힙합 신을 넘어 팝 음악계 전반에 다다르고 있을 정도다. 랩/힙합 음악이 빌보드 차트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힙합 뮤지션들은 빈민가에서 자수성가한 흑인으로서 게토의 롤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종을 초월하는 상품으로서도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 에미넴이 있다. 그는 The Marshall Mathers LP뿐만 아니라 The Eminem Show로도 천만 장 이상 판매량을 기록한, 두 장의 다이아몬드 앨범을 보유한 유일한 힙합 뮤지션이며,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유일무이한 힙합 뮤지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이미 최고의 성과를 거둔 그가 앞으로 그려나가고자 하는 청사진은 어떨지 매번 궁금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강일권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 '이주의 발견' 해외부문 선정 & 집필

이 외 여러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흑인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