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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 Open Class – 호모 그라피쿠스: 이미지를 사랑한 인간

2015.09.09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죠. 기호학자인 김성도 교수는 인간의 특징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우리의 몸 속에 DNA처럼 새겨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 이미지. 인간은 태초부터 이미지를 사랑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그는 호모 그라피쿠스(Homo Graphicus)라 칭합니다.





이미지는 제2의 피부다


이미지가 폭발하는 시대입니다. 이미지는 도처에 깔려 있고, 우리는 이미지로부터 둘러 쌓여 있죠. ‘멀티미디어’의 등장은 인간을 이미지의 홍수 속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이미지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이미지는 제2의 피부입니다. 여러분을 에워싸고 감싸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게다가 이미지는 인간을 변형시킵니다. 이미지를 통해 감동을 받거나 좋은 방향이나 나쁜 방향으로 변화할 수가 있는 거죠.” 


김성도 교수의 말처럼 이미지는 인간에게 감정적, 정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기억 깊숙한 곳에 남아 스며듭니다. 글이나 말에 비해 시각적인 각인 효과는 훨씬 더 강렬하고 본능적입니다. 





이미지는 글보다 열등한가? 아니다


제2의 피부처럼 인간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이미지를 역사는 열등한 것으로 치부해왔습니다. 특히 이미지와 책과의 대립은 늘 존재했습니다. 현대 사람들은 TV나 영화를 보는 것만큼 책을 읽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한탄합니다. 


“인문학에서 이미지는 오랫동안 천덕꾸러기였습니다. 적이었습니다. 특히 서양철학에서의 이미지는 추상적인 콘셉트나 개념에 도달하지 못하는 열등한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동굴 속에서 세상의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보며 착각 속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지에 대해 그런 부정적인 진술들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뿌리 깊은 편견이었죠. 사실 호모 사피엔스가 읽고 쓰기 시작한 건 아주 근세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들 몇 만년 전의 일인 줄로 착각하고 있지만 아닙니다. 인간은 반드시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닙니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오히려 인공적인 행동입니다. 입으로 말하고 듣는 구술이 훨씬 자연스러운 행동이죠.”





인간의 말과 이미지는 동시에 진화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인간이 이미지를 보고 그리는 것은 구술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일까요? 인간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미지와 공생하기 시작한 걸까요? 


“인간이 말을 하면서부터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허구’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과 다르게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줄 압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소꿉놀이처럼 저마다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내거든요? 이때 아이에게 색연필을 쥐어주어 보세요. 아마 그림을 그릴 겁니다. 말하는 것과 그리는 것은 수백 년 간의 진화를 거쳐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들을 분리시켜 놓았어요. 실은 하나로 연동되어 있는데 말이죠.” 


그는 자신이 방문했던 프랑스 쇼베 동굴벽화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36000 ans plus tard - Je ne fais que passer - ARTE Creative



이미지는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불변이다


원초적인 힘과 꿈틀거리는 생동감. 쇼베 동굴벽화의 그림들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이 생생합니다. 36,000년 전, 이미 인간은 이토록 섬세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영위했던 것입니다. 


“동굴벽화는 스타일들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스타일과 양식들은 죽 지속되죠. 호모 사피엔스의 사유 스타일이 똑같다는 증거입니다. 선사시대에 어떻게 이런 그림들이 가능했는지 생태학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시각적인 증언입니다. 미술의 유년기가 아니라 최고 절정기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만이 상징적인 언어를 구사했고 자신의 상상력에 기초하여 흔적들을 남겼습니다. 이미지가 강력한 이유는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동굴벽화의 이미지 속에는 분명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성과 강력함이 존재합니다. 일관성, 통일성, 그리고 불변성. 태초부터 이미지를 사랑했던 인간, 호모 그라피쿠스(Homo Graphicus)에게 이미지는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유전자였습니다. 


“이미지는 불변입니다. 껍데기, 혹은 외피가 아닌 사람의 심금과 영혼을 울릴 수 있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지가 가진 힘입니다.” 





김성도 교수

세계적인 기호학자. 파리 10대학교에서 언어학과 기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옥스퍼드와 미국 하버드, 프랑스 리모주 대학교에서 방문 교수 및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 세계 최고 권위의 기호학 학술지 <세미오티카>의 편집위원과 세계기호학회 집행 위원을 맡고 있다. <세미오티카>의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