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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테이지] 내한 공연 역사상 전무후무한 감동의 근접 조우 – 현대카드 Curated 엘튼 존

2015.12.11


엘튼 존(Elton John)의 이번 내한 공연 이전에 진행된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의 규모는 약 1만 7천 석, 그리고 뉴질랜드의 웨스트팩 스타디움의 경우 약 3만 6천 석을 각각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번 내한공연은 단 500명의 관객만을 수용하는 공간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진행됐다. 그러니까 3만 단위의 뉴질랜드까지 가지 않더라도 1만 단위의 요코하마 아레나 수용 관객의 약 34분의 1 규모가 되는 셈이다. 심지어 다른 투어 멤버 없이 엘튼 존 혼자 피아노 한대만 놓고 진행됐던 2007년 일본 무도관 공연에서도 약 1만 명 가량이 모였다. 앞의 사례들을 종합해 봤을 때 이번 내한공연의 성사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때문에 공연을 보기 이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정작 공연장에 도착해 직접 눈으로 무대를 확인했음에도 마찬가지로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와중 진행된 2004년 잠실 주경기장에서의 최초 내한 당시 엘튼 존은 다음 번 내한 때는 관객들이 젖지 않도록 실내에서 공연하겠다 말했고, 이후 2012년 내한 때는 실제로 천장이 막혀있는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내 공연장에서 성사됐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실내 공연장이 아닌, 여러모로 더욱 특별한 공간이었다. 공연장에는 한 시간 전부터 중년의 팬들은 물론 젊은 층들, 심지어는 청소년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거장의 무대와 악기들이 이렇게나 근접한 곳에 셋팅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는지 많은 이들이 공연 시작 이전부터 무대 사진을 촬영했다.

  




엘튼 존의 땀 방울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사상 초유의 퍼포먼스


공연 시간이 되자마자 밴드 멤버들이 먼저 무대 위에 올랐다. 만 40년 이상을 함께 해온 드러머 나이젤 올슨과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톤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나이젤 올슨의 손 그림과 이름이 새겨진 두 대의 드럼 워크샵 킥 드럼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로 깁슨 레스 폴을 사용하는 데이비 존스톤의 경우 항상 사진으로만 봐왔던 깁슨의 리버스 플라잉 브이를 매고 무대 위로 등장했다.


2004년 첫 내한, 그리고 지난 2012년도 내한 당시에도 첫 곡이었던 'The Bitch Is Back'으로 세 번째 내한 공연이 시작됐다. 최근 공연들에서 주로 'Funeral For A Friend'를 인트로로 연주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출발이다. 간주가 시작되고 얼마 후, 드디어 엘튼 존이 등장했다. 무대 위로 올라오자 마자 손으로 리듬을 탔는데, 필자의 경우 공연장 뒤편에서 봤음에도 마치 잠실 주경기장의 맨 앞자리 수준의 거리 정도로 느껴졌다. 심지어는 엘튼 존의 찰랑거리는 십자가 귀걸이까지 보일 정도였는데 도대체 맨 앞자리에서 본 이들은 어땠을까 싶다. 





1973년, 무려 8주 연속 전미 차트 정상을 휩쓸었던 명반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대표 곡 'Bennie And The Jets'가 이어졌다. 붉은 조명 아래 특유의 절도 넘치는 리듬라인은 라이브에서 더욱 생생했고 엘튼 존은 간혹 일어선 채 연주하면서 사람들에게 떼창을 유도했다. 97년 버전이 아닌 73년도 버전의 'Candle in the Wind'가 이어졌다. 이 두 곡의 피아노 인트로가 귀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이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Goodbye Yellow Brick Road] 앨범에서 두 곡을 했고 이제는 [Madman Across the Water] 앨범에서 두 곡을 하겠다 말하면서 'Levon', 그리고 영화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클라이막스에서 등장인물들이 다같이 투어버스에서 불렀던 명곡 'Tiny Dancer' 같은 발라드 곡들을 이어냈다. 'Levon'의 경우 화려한 오케스트라를 신시사이저 연주자 킴 불러드가 재연해냈다. 참고로 그는 80년대 밴드 포코의 멤버로, 국내에서는 이승환의 5집 앨범 [Cycle]의 프로듀서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퍼커션 주자 존 마혼이 심벌로 시작해 콩가, 탬버린으로 바쁘게 오가는 와중, 엘튼 존의 묘기 같은 트릴 연주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Madman Across the Water]의 커버를 연상케 하는 푸른 조명이 깔리고 'Tiny Dance'가 흘렀다(노래가사 또한 "Blue Jean Baby"로 시작한다). 이 뭉클한 노래가 펼쳐지는 광경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데이비 존스톤은 더블 넥 기타를 연주했는데, 그는 튜닝 때문에 슬라이드 바로 연주하는 곡은 항상 더블넥 기타를 이용해오곤 했다.


1973년 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에 수록된 발라드 'Daniel'에 이어 엘튼 존의 일곱 번째 넘버원 곡이자 '엘튼 존 밴드' 명의로 발표한 싱글 'Philadelphia Freedom'의 건강한 목소리와 피아노가 울려 퍼졌다. 특히 베이스 주자 맷 비조넷은 익살스럽게 베이스를 위로 들어 보이며 연주하기도 했다. 익숙한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피아노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곧바로 노란 조명이 깔렸다. 사람들은 이 명곡의 허밍을 성심 성의껏 따라 불렀다. 이후 엘튼 존의 서정적인 즉흥 피아노 연주 이후 갑자기 'Rocket Man'의 인트로를 삽입시켜냈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와중 다시금 흐름을 되찾는 이런 순발력은 과연 거장답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탄력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박력 있는 피아노 연주는 있는 그대로 마음 속으로 울려왔다.





1983년도 앨범 [Too Low For Zero]에 수록된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의 경우 엘튼 존이 저음을, 그리고 밴드가 고음의 코러스를 완수해냈다. 특히 고령의 드러머 나이젤 올슨이 드럼을 연주하며 열창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앨범에서 스티비 원더가 녹음한 하모니카는 키보드 연주로 대신 재연해냈다. 1992년 작 [The One]의 감동적인 타이틀 트랙 'The One'은 엘튼 존이 알콜과 약물로 인해 요양시설에서 나온 직후 다시 출발하는 의미에서 발표한 노래로, 밴드의 도움 없이 혼자 핀 조명 아래서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은 인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엘튼 존 특유의 믿음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익숙한 피아노 인트로와 함께 엘튼 존 최고의 대표 곡 중 하나인 'Your Song'이 시작됐다. 혼자 노래를 부르는 와중 2절부터 밴드가 함께 했는데, 시간을 초월해내는 이 명곡이 흐르자 공연장에는 온화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1984년 작 [Breaking Hearts]의 경쾌한 'Sad Songs (Say So Much)'가 흐르자 사람들은 몸을 흔들며 감상하기도 했다. 퍼커션 주자 존 마혼은 공연장 천장에 위치한 쇠기둥을 스틱으로 치면서 컴팩트한 공간에 걸맞는 재치 있는 연주를 전개해내기도 했다. 멤버 소개 이후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불러 더욱 유명해진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의 장중한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Your Song' 때보다 더욱 크게 환호를 보냈다. 비장한 감동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와중 비로소 공연이 절정에 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에는 로큰롤 메들리가 펼쳐진다. 경쾌한 80년대 히트 곡 'I'm Still Standing'은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꽤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목 수술을 하기도 했고 약물로 인한 재활치료를 받기도 했던 엘튼 존은 여전히 계속 노래하며 정상의 자리에 서있기 때문이다. 힘있는 손가락질과 함께 [Goodbye Yellow Brick Road] 앨범의 'Your Sister Can't Twist (But She Can Rock 'n Roll)'과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을 앨범 그대로 이어내면서 이 브레이크 없는 로큰롤 레퍼토리가 뜨겁게 장내를 달궈놓은 채 공연은 막을 내렸다. 특히 이런 빠른 템포의 트랙에서 엘튼 존의 피아노 솔로가 두드러졌는데 마치 피아노의 신이 강림이라도 한 듯 그의 손가락은 맹렬히 내달려나갔다. 


첫 내한에서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그리고 두 번째 내한에서는 'Circle of Life'를 마지막 곡으로 배치해내면서 두 번 모두 [라이온 킹] 사운드트랙의 곡으로 공연을 마무리 지어낸 바 있는데 이번에는 1972년도 히트곡 'Crocodile Rock'으로 공연을 끝맺었다. 노래 시작 전 관객들에게 노래하고 싶으냐 물었고, 결국 싱얼롱이 나오는 부분은 관객들의 대 합창으로 채워졌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내 앞에서 관람하던 외국인 노부부는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다. 필자 또한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앵콜까지 끝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공연의 여운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자리를 뜨지 못한 관객들은 10여분 동안 앵콜을 외치고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갔다. 



'인간 엘튼 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진귀한 현장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 대 스타의 퍼포먼스를 이런 규모의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All The Hits Tour'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세대를 초월한 소중한 히트 곡들을 아낌없이 선보인 자리였고, 엘튼 존의 화려한 생애를 실감케 하는 무대였다. 특히나 엘튼 존 옆에서 40여 년을 함께해온 데이비 존스톤과 나이젤 올슨이라는 영광스런 역사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레코딩한 명곡을 백업, 혹은 재연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들려주면서 더욱 원음의 뉘앙스에 가까운 무대로서 완결될 수 있었다.


도무지 68세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서운 에너지가 엘튼 존에게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 그리고 피아노 볼륨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연장에 연장을 거듭했던 라스 베가스 시저스 팰리스에서의 장기공연을 비롯, 보나루 페스티벌 등에 출연하면서 최근까지 정력적인 퍼포먼스를 해온 엘튼 존이었는데, 감히 '여전한 현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생동감으로 가득 찬 라이브였다. 특히 그가 관객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곰처럼 소리지르는 제스쳐는 이 사람이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은 아닐 것이라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따금씩 최고의 미소를 날리며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대의 규모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과연 톱 클래스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멘트는 적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척 친밀하게 그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가 관객석과 지나치게 가깝다 보니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톤은 자신이 연주하던 기타 피크를 관객석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객의 손에 쥐어주는 진풍경 마저 벌어졌다. 엘튼 존의 섬세한 피아노 연주는 더욱 가까이 들려왔고 때문에 이 소리들은 뭔가 필터 같은 것을 거치지 않은 채 순도 높게 우리 체내로 흡수되어 갔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가 아니면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간만에 모두가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했던 공연이었다. 과연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특별한 경험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뭔가 루즈하다거나 비어있다는 생각을 단 1초도 할 수 없는 꽉 찬 퍼포먼스였다. 그것은 엘튼 존이 히트곡이 많은 아티스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 곡 한 곡 정성을 다해 힘있는 가창과 아름다운 연주로 완수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기 시절에 비해 목소리의 저음이 두드러졌지만 이 보이스 톤은 쇠약해지기는커녕 점차 깊이와 활력을 더해갔다. 이처럼 선택된 관객들은 '엘튼 존'이라는 열정적인 인간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있는 그대로 체험했다. 그리고는 엘튼 존의 전성기를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라 단언하게 됐다.



 

Writer. 한상철
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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