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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Class] 익숙함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힘






10월 오픈클래스에서는 국내 타이포 개발의 선두자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석금호 의장과 함께했는데요. 30여 년간 700여 개에 이르는 한글 폰트를 개발한 석금호 의장의 이야기를 통해 한 분야에서 꾸준히 창의성을 발휘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지금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정체성은 창의성에 어떻게 기여할까?







석금호 의장은 2002년 월드컵 전 국민이 모두 길거리에 나와 축구 하나로 모르는 사람과 껴안고 우는 경험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기쁘게 응원에 참여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각자 정체성을 의지할 대상이 없으면 축구공 하나에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패딩 브랜드로 중고등 학생의 계급이 나뉘고 패가 갈리는 현상, 그리고 남대문 화재 같은 사건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정체성이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디자인 강연에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체성이 모호하면 온전한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 사회의 모든 위기는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오늘은 본질적인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스스로 정체성에 대해 질문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나는 왜 있어야 하는지, 국가, 혹은 기업, 작게는 브랜드, 상품, 서비스와 같은 것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보다 피상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한글부터 먼저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세종대왕은 왕이라는 신분으로 세계 최고의 창의성을 자랑하는 한글을 개발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살던 시기에 우리 조선은 시대적으로 아프고 상처가 많은 시절을 겪고 있었습니다. 명나라에는 조공을 끊임없이 하고, 왜의 침입을 막으며 불안에 떨던 시기였던 것이죠. 세종 또한 이런 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이럴 때 나온 작품이 바로 한글입니다.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Geoffrey Sampson





한글은 엄지 하나로 자판 입력이 가능한 문자로 ‘엄지족’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세계적 이슈가 된 문자입니다. 또한 한글은 한자와 일어 대비 7배의 속도를 낼 수 있는데요. 이렇게 한글은 어마무시하고, 창조적인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든 역사를 보고 석금호 의장의 자존감 또한 올라갔다고 하는데요.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고 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이곳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한다. 조선 문자 한글은 산스크리트 문자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세밀히 연구해보면 한글은 완벽한 문자가 갖춰야 하는 조건 이상을 갖추고 있다.” -Homer Hulbert 




헐버트 박사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학자들이 이 사실에 동감하고 있는데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으로 문자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세종은 이런 개발을 하지 않아도 왕의 특권을 모두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4대부들의 암살 위협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한글이 나온 것에는 당시 세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조선의 왕이 되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부에서 오는 상처로 고통받는 백성에게 자신이 왕이 된 이유를 알리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이렇게 참된 창의성은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질문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폰트를 개발한 산돌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을까요?



세계 최대 글로벌 잡지의 한국지사 아트디렉터로 일했던 석금호 의장은 활자 인쇄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우리의 소프트웨어에 연결되는 한글 글자판을 일본에서 수입해 온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석금호 의장은 한글 글자판을 일본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책 한 권도 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도 슬프고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미래의 딸이 “아빠가 직장생활 할 때 한글을 수입했다며, 아빠는 그때 뭐 했어?”라는 말이 떠오르며 마음을 울렸고, 그렇게 글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허름한 작업실에서 3년간 라면을 먹으며 생활했지만, 한글 활자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 어떤 외로움과 배고픔을 이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먼저 그는 현대적이고 시대적인 반영이 한글 활자에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조에는 아주 아름다운 우리 미의 곡선이 담겨있는데, 그 곡선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개발을 했습니다. 활자 개발은 일종의 건축과 같은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문화, 기술, 언어, 문자, 독서 심리학 등 모든 것이 동원되어야 제대로 된 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 대표 출판용 활자인 명조체(제비체)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산돌 커뮤니케이션의 서체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CASE 01. 맑은고딕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본 서체는 굴림체였는데 그 오리지널은 일본에서 온 디자인이었기에, 우리의 고유한 한국의 디자인을 담은 활자를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산돌커뮤니케이션이 개발을 담당할 회사로 선정되었지만 예산 문제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석금호 의장은 우연한 기회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찾아가 한글 폰트 개발을 설득시키기게 되었고, 그렇게 지금의 맑은 고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CASE02. 산돌고딕 

석금호 의장은 다양한 폰트를 개발하던 중 애플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애플의 기본 서체로 쓸 수 있는 한글 폰트 샘플을 요청했고, 그 중에서도 산돌 고딕을 발전시켜 9개의 폰트가 모두 채용이 되었고, 애플의 모든 기기의 기본 서체는 산돌고딕Neo가 되었습니다.



CASE03. Noto-sans for google 

구글에서도 몇 년간 프로젝트를 함께 시행했는데요. 일본어, 중국어 디자인 통일화된 서체로 개발된 폰트가 바로 Noto-sans 입니다. 이 이름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도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구글에서 인식되지 않는 글자는 네모난 모형으로 입력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네모칸을 두부를 “뜻하는 TOFU로 보았는데요. 당신이 한글, 중국어, 일본어가 모두 호환되는 이 폰트를 쓰면 더 이상 두부와 같은 네모칸을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의 no-to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산돌커뮤니케이션의 대표 활자에 대한 비하인드를 살펴보았는데요. 산돌커뮤니케이션은 먼저 우리 고유의 멋을 폰트에 녹여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사실 일본은 곡선에 대한 미의 기준이 다른데요. 일본은 곱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추구한다면, 우리의 곡선은 속도감이 있고 우아합니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습득하지 않고는 우리는 활자를 개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문화를 활자에 담아냈고, 우리는 더 이상 일본에서 수입하지 않고도 우리의 고유 활자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볼까요? 



정체성에 대한 답이 없는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정체성이 발견되는 사람은 ‘이상’이 생기고, 이상이 생기면 갈망과 분노가 동시에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갈망과 분노가 에너지로 충전되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싹튼 창의성은 행동과 실천 그리고 인내를 거쳐 결실을 맺게 됩니다. 혹시라도 이번 오픈클래스의 이야기가 공감된다면, 나에게 진정한 디자인의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