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글 보기

[현대카드슈퍼콘서트23] 거룩함의 보이스, 샘 스미스 첫 내한 공연 후기




“나도 내 음악이 가끔은 우울하고 슬프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오늘 밤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라요.” 저 말 그대로였다. 약 1시간 40분 동안 관객들은 행복감에 도취되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때로는 몸을 들썩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느린 템포의 곡이 많기에 공연이 좀 루즈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100퍼센트 판단착오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브를 본 뒤 해당 뮤지션을 향한 우리의 애정은 대개 둘로 나뉘어진다. 더 깊어지거나, 약간은 흐려지거나. 10월 9일 저녁 고척 스카이돔에 왔던 팬들에게 설문조사를 돌리면 90퍼센트 이상 전자를 택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하긴, 공연 전부터 “꽃의 언어로 얘기하자. 그게 더 쉬우니까”라는 문구를 띄우고, 시작 바로 직전에는 “잠시 전화를 끄고 별에게 의지해봐요”라고 제안하는 뮤지션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의 곡 <One Day At A Time>의 가사 일부다. 




▲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SAM SMITH - I'm Not The Only One ▲




‘현대카드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내한공연’의 첫 번째 절정은 <I’m Not The Only One>이 흘러나오면서부터였다. 첫 곡 <One Last Song>을 마친 그는 무반주로 이 곡을 노래하며 떼창을 유도했고, 관객들은 일제히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열기를 더했다. 비단 이 곡뿐만은 아니었다. 공연 내내 그는 적극적인 교감을 정말이지 능숙하게 이끌어냈는데, 이게 바로 이 발라드 가수의 라이브가 단 1초도 지루할 틈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그가 발라드에만 헌신한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Restart>를 부를 때에는 귀요미 폭발 댄스 타임을 열고, 디스클로저(Disclosure)와 함께 발표한 <Omen>에서는 흥겨운 일렉트로 리듬을 통해 관객들의 기립을 유도했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Latch>의 몫이었다. 두 번째 절정이라 할 이 곡과 함께 관객들의 휴대폰 불빛이 일제히 켜졌고, 샘 스미스는 진심 감격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손 키스를 날렸다. 







샘 스미스의 가창에는 흔들림이라곤 없었다. 무엇보다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부분에서도 더없이 평온한 얼굴로 노래를 소화해내는 능력이 놀라웠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모두 아는 유명 가수와 공연이 끝난 뒤 후기도 나눌 겸 카톡을 주고 받았다. 그 역시 샘 스미스의 노래 실력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노래면 노래, 연주면 연주, 뭐 하나 빠질 게 없었던 라이브였다는 게 그와 나의 일치된 견해다. 




▲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SAM SMITH - Lay Me Down ▲




샘 스미스의 진가가 더 빛을 발한 건 다음 곡들을 부를 때였다. “가장 먼저 만든 곡 중 하나지만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다”고 말한 뒤에 들려줬던 <Lay Me Down>은 스튜디오 버전도 좋지만 라이브에서 아름다운 후렴구가 더 깊고 넓게 울려 퍼지는 노래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런 유의 발라드를 작곡할 때 샘 스미스는 가스펠 코러스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다름 아닌 가스펠이야말로 라이브를 잘하면 소위 말해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 곡 외에 영화 <007 스펙터>의 주제가로 쓰인 <Writing's On The Wall>, 평소에 내가 가장 자주 찾는 곡인 <Pray> 등도 샘 스미스표 가스펠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한 곡들이었다. 뭐랄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곡들에서 나는 ‘거룩함’ 같은 감정을 느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란 것을 알려주고 싶어 이 곡을 썼어요. 나는 내가 게이인 게 자랑스러워요.” 이 언급 뒤에 노래한 <HIM>은 그 거룩함의 어떤 절정이었다. 







전체적으로 무대 장치는 소박한 편이었다. 하나, 이게 바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하게 무대 위 가수와 밴드의 연주를 ‘함께’ 즐기는 것, 여기에 바로 라이브의 본질적인 가치가 존재하는 것 아니겠나. 화려한 무대 장치나 강렬한 퍼포먼스가 부재했음에도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현대카드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내한공연’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오랫동안 회자될 게 분명하다. 


과연, 음악으로 자신감 있게 직구 승부하는 공연은 그 여운이 길게 남기 마련이다. 2019년 한글날은 내 귀가 호강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