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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라이브러리] 도시는 어떻게 영감으로 작용하나 - 도시재생 전문가 김정후 박사


2018.04.10


몰입과 영감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도시는 어떻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나’라는 주제로 도시재생 전문가 김정후 박사의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도시라고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각자 다른 분야와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도시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더 나아가서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 어떤 영감을 받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도시재생 전문가 김정후 박사로부터 들어봤습니다.



Inspiration vs motivation


영감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어떤 동기가 있을 때 오는 반응이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이죠. 도시 또한 어떤 동기가 부여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로마 시대에 발명된 열쇠는 내가 가진 것들을 가두겠다는 동기가 영감으로 성장하여 만들어졌는데요. 도시의 발전도 이와 비슷합니다. 범죄가 없었다면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범죄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고 이것이 반응하면서 집, 그리고 도시가 발전되었습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동기와 반응은 발전을 이루어 내는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각 도시와 건축의 사례를 통해 동기와 영감의 원천에 대해 알아볼까요




전쟁의 잔해를 건축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다 / Coventry Cathedral, Coventry


재규어를 만들고 산업의 중심이 되었던 영국의 코벤트리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의 제1 타깃이었습니다. 독일의 폭격기로 인해 도시 90%가 무너지고 도시의 상징이었던 코벤트리 대성당은 뼈대만 남게 되는 참혹함을 맞이하게 됐는데요. 이러한 상황 속 코벤트리 시와 시민들은 도시를 재건하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보통 현상 설계 기준은 피해의 잔해를 최대한 빨리 치우고 재건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당시 현상 설계를 맡았던 영국의 유명 건축가 바질 스펜스는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폐허로 남은 성당의 잔해는 그대로 남겨두고 그 옆에 새로운 성당을 짓자는 아이디어였는데요. 왜 폐허가 된 성당을 그대로 남겨두자고 했을까요? 그가 기록과 기억에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죠. 



폭격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좌측 구 성당과 우측의 신축 성당


이렇게 코벤트리 대성당은 건축을 통해 어둡고 참혹했던 도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현재 영국에서 가장 성스럽게 역사를 보존하는 곳으로 소개될 뿐만 아니라 화해, 화합의 상징 도시가 되었습니다.

역사의 점과 점을 잇는 역할이 된 코벤트리 대성당. 도시에서 발생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동기가 영감의 원천이 되어, 어떻게 건축으로 재탄생 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주의의 개념을 건축으로 새롭게 정의하다 / Reichstag, Berlin


두 번째로는 베를린에 있는 국회의사당 신축 사례인데요. 1999년 베를린은 히틀러에 의해 화재가 났던 옛 국회의사당을 과감히 개조해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현상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노만 포스터는 건물의 뼈대는 유지하되, 중앙의 돔(Dome)만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노만 포스터는 돔을 투명유리로 제작하고 돔 주변은 시민이 드나들고 쉴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로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중앙의 상부에 위치했던 의사당을 돔 아래 지하로 옮겼는데요. 시민들이 투명한 돔을 통해 입법 활동을 다 지켜볼 수 있게 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만 포스터는 국회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을 왜 지하로 옮겼을까요? 

그는 정치가 시민 아래에 있다는 깊은 뜻을 건축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시민 위에 군림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 그리고 더 이상 정치가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게 하자는 의미를 나타냈습니다. 건축을 통해 정치의 개념을 바꾼 셈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베를린 국회의사당 신축 이후로 지어진 유럽의 약 25곳의 의사당은 중앙 상부가 아닌 지하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개념을 건축이 새롭게 정의한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건축에 대한 의미와 본질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하는 사례입니다.



분수가 된 추모 시설 / Diana memorial fountain, London


세 번째는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추모 시설 사례입니다. 추모 시설이라고 하면 흔히 비석, 탑, 동상과 같은 시설을 떠올리는데요. 아이들을 사랑하고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했던 다이애나 비의 업적 나타내고자 했던 조경 건축가 닐 포터는 그녀의 추모 시설을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매체인 물을 활용해 '분수'로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게다가 물이 많이 튀어 가까이 가기 어려운 기존 분수의 특성을 감안하여, 사람들이 친밀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타원 모양의 분수를 고안해냅니다.  다이애나 비가 평소 아이들, 시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가까이했던 것처럼 지금까지도 그들이 다이애나 비 추모 분수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가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것이죠.



또한, 분수 바닥 굴곡의 높이와 패턴을 구간별로 다르게 하며 흐르는 물의 파동과 소리를 디자인하였는데요. 물의 흐름을 따라 걷다 보면 각기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합니다. 이 추모 시설은 원래 있던 나무를 피해 가는 비정형적 형태로, 하이드 파크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깨지 않는 구조를 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탑을 세우거나 꽃을 놓고 가는 추모 시설이 아닌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와서 물놀이도 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이 추모 분수는 아이들 그리고 국민을 사랑했던 다이애나 비가 진정으로 원했던 형태의 추모 시설이 아닐까요?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인사이트가 돋보이는 이 추모 분수는 도시 속 추모 시설에 대한 의미와 진정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미술관, 그 이상의 가치로 지역의 활력을 이끌다 / Tate modern, London


마지막으로 김정후 박사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1960년대 산업 현장의 중심이었던 런던에는 많은 화력발전소가 생겨났고, 1985년 그중에 하나를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개조시켰는데요. 테이트 모던은 작품 감상이 주가 되는 다른 미술관과는 달리 많은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그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으며 뛰어놀고, 바자회를 열거나, 때로는 스케이트보드장, 대형 미끄럼틀을 설치하여 다양한 이벤트로 시민들이 즐길 거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테이트 모던 앞 밀레니엄 브릿지에서는 스완 레이크, 빌리 엘리엇 등 세계적 수준의 발레단 공연들이 진행되어 사람들을 이끄는 볼거리를 꾸준히 만들어냅니다




미술관에서 왜 이런 일들을 주관할까요?

테이트 모던은 미술관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쉬며모이고, 고 싶어 하는 퍼블릭 스페이스가 되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이 목적은 런던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에 있던 화력발전소 부근을 미술관으로 개조함으로써 테이트 모던을 감싸고 있는 지역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런던시의 장기 도시 계획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이트 모던은 단순히 작품 감상을 넘어 다양한 문화예술 이벤트를 꾸준히 주관하며 쇠퇴했던 테이트 모던 인근 지역에 활력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도시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죠어떻게 하면 도시와 지역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지금까지 김정후 박사와 함께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봤는데요. 만약에 우리가 도시를 1차원적, 즉, 평면으로만 이해한다면 도시에 어떠한 시간들이 누적되어 있고 어떤 공간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시를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면 이 도시가 시대별로 어떤 형태와 구조, 목적, 정책에 따라 진화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입체적인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동기를 부여 받고 이에 따라 우리 도시에 대한 영감을 얻을 것입니다.

김정후박사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