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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 Open Class - 영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

2017.12.28




영화는 어떤 이야기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을 지녔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속도가 붙은 듯 빠르게 발전하는 영화산업의 스토리 구성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2017년 마지막 오픈클래스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 <살인의 추억>, <타짜> 등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를 제작한 차승재 교수의 리얼한 영화 제작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의 모든 기획은 창대하지만, 그 끝은 미미하다고들 하죠.

영화도 똑같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저희의 운명이고, 역할입니다.”




영화 제작부터 영상대학원 교수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영화계의 올드보이라 칭하는 차승재 교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영화의 기획 과정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소개합니다. 망망대해에서 참치를 낚은 노인의 모습을 기획의 첫 단계로 본다면, 참치를 끌고 가는 모습은 여러 변수를 만난 중간 과정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더 나아가 노인이 참치를 어판장에 판다고 가정하면, 그 모습은 기획의 마지막 단계일 거라고. 그러나 옮기는 과정에서 긁히고 벗겨진 참치는 결국 조림용으로밖에 되지 않을뿐더러 더 심할 경우, <노인과 바다>처럼 다 뜯겨 뼈다귀만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련한 팀만이 참치를 상처 하나 없이 비싼 값에 팔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차승재 교수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까지 제각각 다른 시작점이 있었던 영화별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 [유령] 민병천 감독 / 최민수, 정우성 주연


꽤 오래전에 개봉된 <유령>은 우리나라가 핵잠수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에 핵미사일을 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친구들에게 들은 육해공 군대 이야기, 일본에서 우연히 읽은 소비에트연방 해체 기사 등 그의 머릿속에 많은 이야기가 섞여 있던 어느 날, 만화책 ‘람보’를 보게 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아픔에 대한 보상심리로 람보 캐릭터가 되어 일본을 통쾌하게 이기는 영화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렇게 차승재 교수의 여러 가지 지식을 한데 묶은 영화 <유령>이 제작됩니다. 다양한 무기체 중 ‘핵잠수함’을 선택한 이유는 군사용 잠수함은 창문이 없고, 심해를 본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CG 기술이 없던 당시에는 잠수함 세트와 스모그, 단 두가지만으로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힙니다.


그는 신문기사, 상식, 주변의 이야기 등 잡다한 지식을 지녀야 스토리를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공부를 통해 방향성을 찾을 수 있고, 꽤 예지력 있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고 말입니다.





-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 송강호, 김상엽 주연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본 연극 <날 보러 와요>의 판권을 사서 제작한 것입니다. 캐스팅 과정에서는 다른 영화를 촬영 중이던 배우 송강호를 1년간 기다리기로 했고, 그 시간 동안 전국 사방으로 헌팅을 다녔다고 합니다.






“송강호와 김상경이 류태호를 보고 쫓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3개의 도를 찍은 골목입니다. 이 골목은 충청도, 꺾으면 경상도 이런 식으로요. 철저한 준비로 뛰어난 완성도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망자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그 때문에 실제 사건을 그대로 다루지않고, 하나하나 풀어헤쳐 재조합하고, 천도재를 지내는 등 많은 준비 끝에 영화 제작에 돌입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완성도와 준비 시간은 관계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좋은 아이템을 흐지부지하게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그럴 땐 과감하게 다음으로 넘기는 것도 하나의 기획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재한 감독 / 정우성, 손예진 주연







한류열풍이 한창이던 때 종종 일본을 방문해 후배에게 일본어를 배우던 차승재 교수는 후배로부터 미팅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클라이언트로 나올 일본 여성을 후배가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미팅 자리가 성사되고 자리에 참석한 그는 의례적인 질문만 주고받습니다. 상대편 여성이 요미우리 TV의 기획자 겸 드라마 작가라는 것, <퓨어 소울>이라는 드라마 대본을 썼다는 것. 그러다 작가가 쓴 드라마 내용의 한 장면을 듣고 바로 판권을 사기로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손예진이 정우성을 잊지 않으려고 데생을 하는데 정우성이 오는 겁니다. 그때 손예진이 4B 연필을 내려놓고 ‘누구시죠?’하고 묻는다는 거예요. 이보다 더 억장이 무너질 수 없죠.”



원작을 보면 틀에 묶일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최소한으로 요약한 대본을 시나리오 작가에게 넘기고,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스토리를 완성한 것입니다. 다소 촌스러워지기 쉬운 멜로 영화의 단점은 샷 구성력이 뛰어난 이재한 감독을 섭외함으로써 세련된 영상미의 영화를 만들어 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100만 엔(약 1천만원)에 산 원작이 다시 일본으로 28억에 팔렸고, 미국 메이저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사러 찾아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 [범죄와의 재구성] 최동훈 감독 / 박신양, 백윤식, 염정아 주연


차승재 교수는 자신의 동네 친구들 대부분이 범죄에 빠진 경우가 많았고, 그가 자란 동네가 비교적 험한 곳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어 한국은행 사기극을 다룬 영화 <범죄와의 재구성>의 모티브가 된 ‘위조 상품권 대량 제작 사건’이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그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국내 유명 패션 기업의 사원이 소위 ‘깡패’라 불리는 조직이 만든 도박장에 빚을 지게 되고, 돈 대신 상품권을 보관하는 금고를 내주어 수천 장의 위조 상품권이 발견된 사건입니다. 차승재 교수는 최동훈 감독을 사건이 일어난 동네로 취재를 보냈고, 최동훈 감독은 실제로 도박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그들을 취재하였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접시 돌린다’, ‘야 청진기 대면 딱 나와’와 같은 말들은 그들이 쓰는 은어거든요. 이런 거 다 그 하우스에서 취재한 거예요.”



작가가 혼자 쓰면 모든 캐릭터의 대사가 작가의 ‘촉’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차승재 교수. 때론 상상력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경우, 취재가 최고의 기획이 되어준다고 말합니다.





1905년 ~ 1945년,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에 대하여






차승재 교수는 영화 <암살>의 핵심 인물 약산 김원봉, 또 같은 의열단 단원이었던 그의 두 번째 처, 박차정 여사의 훌륭한 업적을 이야기하며 요즘 가장 관심을 둔 것이 독립운동사 공부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피가 있었다는 그는 3.1 만세운동에 이어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서 싸운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을 필두로 1,500명의 병력을 떠올립니다. 일본인 사상자는 1,000여 명 이상, 우리나라는 100여 명 정도의 사상자만 발생한 자랑스러운 사건임을 말하며, 그 뒤로도 훌륭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김상옥 열사가 권총 2자루에 실탄 600발을 가지고, 일본 경찰 1,000명과 장장 8시간 전투 끝에 자결하고 돌아가신 장소가 지금의 경복궁이 있는 곳이에요. 시인 구상 선생님께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쓴 수필이 하나 있어요. 여러 면으로 사실이 입증된 거죠.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차승재 교수는 남북이 갈라지기 전엔 조국의 독립을 향한 마음은 모두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1905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하여 드라마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영화에 대한 Q&A


Q. 요즘 관객들이 선호하는 영화가 영웅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요. 그저 트렌드로 받아들이고 보는 게 맞는지, 아님 안타까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둘 다 맞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메이즈 러너>나 <어벤져스>는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스토리지만 결국 우린 영상이 보여주는 상상력을 보는 거죠. 또 하나 저희가 오랫동안 발전한 유전자 중 하나가 ‘이야기의 대한 탐닉’입니다. 무슨 이야기든 재미있으면 귀가 솔깃해지는. 따라서 영화는 스토리, 게임적인 요소가 서로 크로스오버되는 어떤 지점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Q. 교수님께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A. 제 인생의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칸>입니다. 저는 그 영화를 108분짜리로 봤습니다. 한 한달 전 영화 채널에서 하길래 다시 봤는데 그게 풀버전이었어요. 248분. 근데 너무 좋더라고. 정말 미국사회를 그대로 그렸고, 캐릭터가 있고, 서사적으로 완벽하고. 특히 음악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는 게 인생의 꿈입니다.





차승재 교수는 ‘영화 같은 삶’을 외치던 우리의 일상으로 커다란 이야기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다가오는 한 해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근사한 일상을 보내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