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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블랙] GURU Series 01. 나영석PD: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

2017.11.17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10월의 어느 초저녁,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그리고 핀베타 멤버들만을 위한 새로운 강연이 열렸습니다. GURU Series,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룰브레이커 혹은 화제의 인물을 초대하여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첫 강연자는 <1박2일>부터 <삼시세끼>에 이르기까지 명실상부 대한민국 예능계를 이끄는 나영석 PD입니다.





‘있어 보이는’ 프로그램,


그 뒷이야기에 대하여



올해는 케이블 채널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중에서도 나영석 표 예능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신혼일기’, ‘윤식당’, ‘알쓸신잡’은 나영석PD가 후배 PD들과 함께한 CO-WORK 제작물로, 아이디어 도출, 실제 제작 과정에서 후배 PD들의 관여도가 높았던 프로그램입니다. 제작진들은 보통 제작 단계에서 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를 점쳐보곤 하는데, 재미있게도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들인 프로그램이 반응이 좋지 않다거나, 반대로 허겁지겁 만든 프로그램이 의외로 큰 사랑을 받는 식입니다. 나영석PD는 이 모든 과정을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삼으며, 첫 주제 선정을 청중에게 맡겼습니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프로그램명을 말씀 주시면, 그 뒷이야기를 해볼게요.”






#알쓸신잡






잡학과 수다의 줄타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알쓸신잡>은 팟캐스트 플랫폼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2년 전, <응답하라>시리즈,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을 작업한 이우정 작가가 팟캐스트 얘기를 꺼냅니다. 소위 말하는 ‘감’ 좋은 작가의 추천 콘텐츠였지만 당시 그는 별 관심 없이 흘려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016년 우리나라는 정치의 시절을 맞이합니다. 대선 시즌이 되면서 팟캐스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온갖 정치 논객과 칼럼니스트가 등장해 정치의 뒷얘기, 환경, 음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영석 사단의 회의실에서도 다시 한 번 ‘팟캐스트’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팟캐스트에서 뭘 들어?”







메이저 플랫폼에 지친 사람들은 팟캐스트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잡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적 희열을 느끼며, 지식을 재미의 한 카테고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주입 받는 게 아니라 대화를 엿들으며 자연스럽게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전직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수평적인 상황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있고 듣는 입장에서도 편하죠.”



리얼리티와 격 없는 대화. 나영석PD는 팟캐스트의 장점을 차용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합니다. 편하게 떠들다 보면 ‘경제’로 시작해 ‘아프리카 사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알쓸신잡>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엔 항상 리스크가 뒤따르는 법. 자칫 잘못하면 과거 교육방송처럼 느껴질 수 있었기에, 나영석PD는 인문학과 사회 분야의 전문가로 유시민을 섭외합니다. 이어 소설가, 과학자, 음식 칼럼니스트 그리고 대화의 속도를 조절할 유희열까지. 각 분야의 멤버를 조합해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는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완성합니다.





#신서유기



B급 정서 가득한 <신서유기>에 대해 말문을 연 나영석PD는 잠깐 헛웃음을 짓습니다. 그 모습을 본 크리에이터들 역시 이유는 몰라도 하나, 둘 웃음을 터뜨립니다.



“제작 초기에 그린 그림과 실제 결과가 가장 불일치한 프로젝트가 바로 신서유기였어요.”







그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올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기획 시 여러 가지 목표를 세운다며, <신서유기> 제작 당시 제작진이 내세운 세 가지 목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첫째, 이수근, 강호동의 컴백

둘째, 인터넷 플랫폼의 가능성 확인

셋째, 중국 진출



도박 사건으로 복귀를 못한 이수근, 세금문제의 긴 터널을 뚫고 나왔지만 하는 것마다 잘 안 되던 강호동, 이혼으로 괴로워하던 은지원, 멀쩡한 이승기. 과거 <1박2일> 멤버들에게 도움을 주고, 더불어 독특한 색깔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던 나영석PD.


또한 당시 인터넷 상의 콘텐츠가 뜨고 있었기에 회사 돈으로 인터넷 플랫폼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도 고백합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중국 진출 역시 노림수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서유기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콘텐츠이고, 죄가 없는 삼장법사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요괴 3명을 데리고 구원의 길로 간다는 내용이 현재와 맞아떨어져 제작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서유기>는 강호동, 이수근의 복귀 외 기대했던 초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합니다. 먼저, 인터넷 콘텐츠로 큰 수익을 내기란 무리였다고 말합니다. 물론 손해를 보진 않았지만 광고, 방송으로 버는 수익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입니다. 중국판 인터넷 방송은 3천만뷰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10억뷰를 내는 <태양의 후예>에 비하면 마이너 콘텐츠나 다름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신서유기>의 막을 내리려던 때에 예상치 못한 B급 정서가 인기를 얻으며 지금껏 이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기획과 결과는 전혀 다르지만 가장 재미있는 프로젝트라고 한 <신서유기>의 뒷이야기, 과연 흥미로웠습니다.





#윤식당






나영석PD는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슬로우TV’를 언급했습니다. 노르웨이의 한 방송사에서 장장 7시간동안 기차 창 밖 풍경, 뜨개질하는 모습 등을 편집 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송출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무려 1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나영석PD는 기존 방송 콘텐츠에 지친 사람들이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시청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슬로우TV를 하면 사람들이 안 볼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분과 실리를 다 보고 싶어 하거든요. 노르웨이도 보고 싶고, 그 안에서 게임도 하고 싶은 거죠.”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진주PD의 로망에서 시작된 <윤식당> 프로젝트. 나영석 PD는 사람들이 원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도록 외국에서 식당을 운영해보기로 합니다. 말 그대로 미션도 하고, 그걸 둘러싼 환경을 보며 힐링 하는 방송인 셈이었습니다.



“그저 외국에 사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동남아 여행을 가면 하는 얘기들 있잖아요? ‘아, 나도 여기서 빵집이나 하고 살면 좋겠다’ 이러한 이야기들이요. 그 로망을 구현시켜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장소 선정에 어려움이 컸던 <윤식당> 프로젝트. 조건은 ‘소소하게 가게를 운영하면서 적당히 즐기며 삶을 살아갈 곳’, ‘한국인이 전혀 없는 곳’, ‘촬영 허가 행정절차가 비교적 간단한 곳’이었습니다. 결국 인도네시아 발리의 길리라는 작은 섬에서 윤식당을 열게 됩니다. 나영석PD는 시즌2도 나온다는 희소식과 함께 <윤식당>의 뒷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나영석PD: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에 대한 Q&A



Q1. 나PD님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건가요?


A. 저는 ‘양심 냉장고’를 보면서 성장한 세대이고, 첫 직장이 KBS 공영방송이었어요. ‘인본주의’, ‘자연주의’, ‘차별 없는 세상’ 등, 선하고 좋은 의도를 담은 프로그램을 하려는 욕구가 컸고, 1박2일 때 좀 과하게 드러났죠. 그런데 사람들은 듣고 싶은 걸 골라 듣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들어주진 않아요. 좋은 일은 알아서들 하게 마련이구요. 제가 요즘 하는 이야기들은 ‘조금 천천히 살기’, ‘걷다가 멈춰보기’ 같은 건데, 트렌드이자 제 취향이기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해요. 새로우면서도 보편성이 있는 메시지여야만 전달될 수 있습니다.



Q2. 과거에 나영석 PD님이 ‘냉장고를 부탁해’와 비슷한 기획안을 내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혹시 본인이 생각했다 실행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시도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있나요?


A. 20년 전, 입사 후에 ‘음식’ 소재로 기획안을 쓰는 시험이 있었어요. 마침 제가 관심있던 소재였죠. 우리 집 냉장고 안은 늘 가득 차 있었거든요. 여름인데 설날 고기도 있고, 엄마한테 버리라고 하면 꼭 나중에 먹는대요. 그래서 생각한 게 ‘냉장고를 열어라’라는 제목이었고, 누군가의 집으로 가서 버릴 음식을 정리해주고, 이렇게, 저렇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실제로 그 당시 똑같은 방송이 있었는데 잘 안됐어요.


사실 프로그램 기획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디선가 다 해요. 다만 시기가 중요한 거거든요. 냉부해 같은 경우는 그 분이 그 프로그램을 그 시기에 했다는 게 대단한 거죠. 사실 저는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 아니에요. 다만, 대화 중에 괜찮은 것들은 머릿속에 담아두고 적절한 시기에 꺼낼 줄 알죠. 삼시세끼랑 신서유기, 다 오래 전에 떠올린 프로젝트였고요.



Q3. 올해 방영된 프로그램들이 후배 PD님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라 하셨는데, PD님은 어느 부분까지 관여하시나요?


A. 편집을 놓은 지 5년 정도 됐어요. ‘내가 이 짓 해서 번 돈을 저놈이 다 먹네?’라는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5년 전에는 ‘내가 이 짓 해서 번 돈’ 그룹이었는데 지금은 ‘저 위에서 다 먹네!’ 그룹에 속해요. (웃음) 아무리 어린 막내 PD라도 믿고, 음악, 구성, 자막 등 전권을 모두 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저는 ‘방송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빼라’, ‘음악이 조금 빠르면 좋겠다’ 등의 팁을 주죠. 시청자들에게 극도의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하게 해요. 하지만 시사를 정말 많이 합니다.



Q4. 프로그램이 이걸로는 부족하다 싶을 때 어떤 식으로 메이크업을 하시나요?


A. 많은 계획을 세워도 현장에 가면 ‘잭슨이 우유가 잘 안 나온다’, ‘에릭이 요리했는데 그냥 그랬다’ 등 분명히 오차가 발생해요. 스타일의 차이인데,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저희는 1회 방송을 위해 약 30시간을 촬영하는데, 그래서 잘 긁어 담으면 뭐라도 있어요. 예를 들어 평소에 A, B, C 폴더를 활용해 작업했는데 상태가 다 안 좋으면 그 외 고양이 폴더도 열고, 정자에 계신 할머니 폴더도 열고, 여러 폴더를 여는 거죠. 가끔은 생각지 못한 폴더가 새로운 기운을 주기도 해요.



Q5. PD님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상에 판타지적 요소를 섞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 일상에서 일과 오피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인데, 혹시 ‘회사’와 관련된 콘텐츠도 기획하고 있으신가요?


A. 없어요. (웃음) 말씀해주신 것처럼 일상을 살짝 비트는 걸 좋아해요. 삼시세끼는 귀촌과 귀농에 관한 프로지만, 사람들이 그걸 보고 ‘나도 귀농해야지’ 생각하진 않아요. 그걸 보고 위로를 얻고, 마음속에 뜨겁게 올라온 불구덩이를 누르고 다시 직장으로 향합니다. 그냥 판타지로 소비하는 거죠.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야외에서 촬영한다는 거예요. 사무실, 스튜디오 등 실내에서는 잘 못 찍겠어요.



Q6. 나영석PD님은 한국 최고의 예능 PD님이라 불리고 있는데, 그렇게 불릴 수 있는 비결을 스스로 생각하신다면?


A. 좀 민망한 질문이네요. 잘 하니까 그렇겠죠? (웃음) 질문이 나왔으니 솔직히 대답할게요. 콘텐츠를 제작할 때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우리 팀이에요. 저는 성과가 1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 팀에 내일이 있으니까요. 저희 팀 막내 작가가 ‘1박2일’, ‘꽃보다 청춘’에 있었기에 다른 팀으로 갈 때 돈 5만 원이라도 더 받게 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좋은 리더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서 좋은 리더는 무엇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야 모든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 모든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우리 팀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시청자가 원하는 흐름을 알고, 그것을 프로그램에 담아내는 나영석 PD. 좋은 팀, 좋은 리더로서 제 역할을 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영석 표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은 핀베타와 스튜디오 블랙 멤버들을 위해 새로운 영감과 통찰을 주는 GURU 시리즈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