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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블랙] 다시 걷기 시작하는 이들에게 묻다: WHY DESIGN

2017.09.08





비가 내리던 8월의 어느 날, 스튜디오 블랙 5층 이벤트홀에서는 특별한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안그라픽스와의 공동기획으로 디자인과 브랜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세션이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날에는 와이즈건축, 가라지 가게의 장영철 대표와 무인양품 코리아의 나루카와 타쿠야 대표에게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스튜디오 블랙과 핀베타 멤버를 포함한 100여명의 크리에이터가 함께 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지금부터 그 현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디자인 좀 아는 [현대카드]


디자인 좀 하는 이들을 불러 모으다





이 날,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5층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자 죽 늘어선 빈 의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의자 위에는 잇워터와 함께 까만 표지의 메모지, 까만 연필, 까만 포장의 막대사탕이 깔끔하게 포장돼 놓여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어디서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블랙박스’의 구성품들이 선물로 준비된 것입니다. 또한 디자이너들의 필독서로 여겨지는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기념 서적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강의 시간이 가까워오자 하나 둘 모여든 100여 명의 크리에이터들이 강의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국립현대미술관 손주영 큐레이터가 나긋한 목소리로 강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은 2,30대 젊은 디자이너로, 강의 내내 강연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와이즈건축·가라지 가게 장영철 대표


간결함의 가치를 말하다





- 간결함의 가치는 무엇일까?

- 간결함은 어떻게 디자인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까?

- 간결함의 가치는 새로운 시대의 지속 가능한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와이즈건축을 통해 북촌 ‘어둠 속의 대화’, ‘ABC 사옥’ 등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다양한 건축적 경험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선보여온 장영철 대표는 가라지 가게의 운영자이기도 합니다. 금호동의 한 차고에서 시작된 가라지 가게는 일상적인 재료를 이용해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는 물건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간결함의 가치를 그대로 녹여낸 것입니다. 그는 가라지 가게의 핵심인 ‘간결함’의 가치와 방법론을 ‘재료, 함께, 배경’이란 세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재료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기본이 되는 재료를 선정해 공정을 최소화하면 설비투자가 적게 들고 생산단가가 낮아집니다. 그 과정에서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간결한 모양새의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둘째, ‘함께 드러나는 윤곽선’입니다. 건축가들은 각각의 정보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정보들을 조합해 답을 얻습니다. 가라지 가게의 대표 상품인 빼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빼빼장은 나무합판 막대 세 개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방식을 기본으로 의자 프레임도 만들고, 소파도 만듭니다. 이렇듯 다른 오브젝트와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바탕의 역할을 하는 것이 간결함의 가치입니다.


세 번째 요소는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건축은 늘 배경으로 존재합니다. 튀어서는 안 되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간결함을 갖춰야 합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상태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결’은 ‘심플’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것이 심플함이라면, 경제가 좋아지고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생겨난 것이 간결함입니다. 일상적이고 편안하며 배경으로 머무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장영철 대표와 하라 켄야가 한 목소리로 말하는 간결함의 가치입니다.





Networking을 위한


맛있는 Breaking Time





유쾌한 입담으로 참석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 장영철 대표의 강의 세션이 끝난 후 장내는 기분 좋은 소란함으로 뒤덮였습니다. 뒤쪽 Kitchen & Pub에 다과들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참석자들은 닭 강정, 시원한 맥주 그리고 과일 디저트를 먹으며 다른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미리 신청한 투어 프로그램에 따라 스튜디오 블랙의 업무 공간과 네트워킹 공간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무지 코리아 나루카와 타쿠야 대표,


무인양품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





- 무인양품은 브랜드가 아니다.

- 무인양품은 지구를 생각하고 소비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상품을 만들어 낸다.

- 무인양품은 ‘이것이 좋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닌 ‘이래서 좋다’를 목표로 한다.

1980년대 경제호황기의 일본에서는 비싸고 호화로운 상품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런 시기에 저렴하고 간결한 상품을 선보인 것이 무인양품입니다. 소재, 생산공정, 포장에 있어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걷어낸 무인양품은 하라 켄야의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디자인 철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채우지 않고 비워내는 것은 Simple이 아닌 Empty의 개념입니다. 과거 일본 권력자의 생활 속에서 Empty의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텅 빈 공간을 조성해두고, 그 곳에서 벚꽃잎을 띄운 찻잔으로 공간을 즐겼습니다. 그러면 벚꽃이 만개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처럼 무인양품은 물건의 본질과 미래를 생각하며 상품을 개발합니다. 텅 빈 그릇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되 불필요한 요소를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풍요로움과 높은 활용성을 부여합니다. 2003년 광고 카피인 ‘무인양품은 브랜드가 아니다’는 개성이나 유행을 상품화하지 않으며 브랜드의 인기를 가격에 반영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적정 가격의 소재를 선택한다.

둘째, 생산 공정에 필요 이상의 손이 가지 않도록 점검한다.

셋째, 포장을 간소화한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고, 한 발 물러남으로써 사용자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생활의 배경이 되고자 하는 것이 무인양품의 철학입니다.





또한 무인양품은 공간과 행위와 물건의 관계를 디자인에 녹여냄으로써 ‘기분 좋은 생활’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여기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작자를 알 수는 없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물건이나 자연에서 힌트를 얻는 방법입니다. 오래된 시계탑을 보고 손목시계를 디자인한다거나 해질녘 지는 해를 보며 약간 찌그러진 원 형태의 조명을 디자인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두 번째는 일상의 사소하고 무의식적인 습관들을 관찰하여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쓰레기통을 디자인한다거나 우산을 바닥의 홈에 맞춰 세워두는 것을 보고 우산꽂이 상품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환풍기에서 힌트를 얻은 벽걸이형 CD플레이어입니다.


이러한 발상을 바탕으로 탄생한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공간을 이루고, 이 공간은 곧 사용자들의 생활을 한층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인양품은 분쟁의 씨앗이 되는 ‘이것이 좋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닌, ‘이래서 좋다’를 지향합니다. 2,10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는 1백 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도 지금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지구온난화, 물과 식량 부족, 고령화사회, 분쟁 등 다양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인양품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인구가 점점 감소하는 하코다테 지역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버려진 논을 농업체험의 공간으로 리디자인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편안한 호텔을 선보이는 일 등이 그것입니다.


‘기분 좋은 생활’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물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무인양품. 타쿠야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광고 카피 ‘자연, 당연, 무지’와 같이 ‘자연처럼 거기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무인양품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습니다.







‘간결함’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인사이트를 구한 장영철 대표와 나루카와 타쿠야 대표. 두 대표는 강의가 끝난 후에도 Q&A 세션을 통해 참석한 크리에이터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참가자들의 열정으로 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이번 강연은 디자인의 본질적 가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은 앞으로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크리에이터들의 영감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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