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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그란데] 팝을 지배하는 ‘치명적 여인’ 아리아나 그란데 공연 리뷰

2017.08.31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팝 가수의 내한 소식은 언제나 반갑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라면 더욱 그렇다. 고척스카이돔(이하 고척돔)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아리아나 그란데는 현재 절정의 인기와 그에 걸맞은 기량을 자랑한다. 대중 관심의 척도가 된 소셜 미디어에선 1억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노래와 앨범은 발표하는 족족 차트 상단에 올려놓는다. 그는 2013년에 첫 앨범 [Yours Truly]를 발매한 이후 줄곧 성장했다. 매끄러운 가창력과 춤사위, 뛰어난 미모와 패션 감각이 아리아나 그란데를 글로벌 스타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최대 매력은 ‘무결점 가창’에 있다. 진성 고음의 폭발력과 섬세하게 음을 다루며 감정을 풀어내는 표현력은 비슷한 연령대의 가수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알앤비 보컬을 기반으로 팝과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와 발라드를 오가는 넓은 스펙트럼도 특장점. ‘Problem’, ‘Bang Bang’, ‘Break free’, ‘Side to side’ 등 각기 다른 스타일의 히트곡들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그는 어떻게 해야 예쁜 선이 나오는지를 정확히 아는 센스 있는 춤꾼이기도 하다. 한국 대중과의 첫 만남에서 그는 이 모든 재주를 오롯이 확인시켰다.





궂은 날씨쯤 ‘No Problem’




꽤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음에도 그를 보기 위한 인파는 이른 시간부터 몰렸다. 공연장 주변 지하철역에서는 스티커, 부채 등 팬들이 자체 제작한 캐릭터 상품을 ‘무나’(무료 나눔)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방불케 하는 광경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높은 국내 인기를 실감케 했다. 특히 언뜻 보기에도 매우 많은 수의 청소년 팬들은 그를 직접 본다는 기쁨에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물론 공식 머천다이즈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도 상당했다. 정식 판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최소 천 명 이상의 관객이 우산을 받쳐 들고 줄을 섰다. 근래 있었던 어떤 해외 가수의 공연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숫자였다.


지난 6월 영국 맨체스터 공연에서 발생한 테러의 여파로 공연장 안팎에선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다. 출입국 관리소에서나 볼법한 보안 검색대, 금속 탐지기는 물론이고, 탐지견과 군인들을 투입하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관객 역시 사전에 고지된 대로 작은 크기의 투명 가방만을 소지한 채 주최 측의 통제를 따랐다. 그치지 않는 비, 까다로운 입장 절차에도 관객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학수고대한 공연인 만큼 이 정도 불편은 각오했다는 듯 보였다.





Simple is the Best




화려한 세트, 복잡한 동선이 주를 이루는 최근 팝 가수들의 투어 트렌드와 달리 이번 공연의 무대 디자인은 비교적 간소했다. 별다른 무대 장치가 없어도 각 노래에 어울리는 백드롭 영상과 가수의 탄탄한 기본기만으로 충분했다.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마침내 공연장 불이 꺼지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10분여의 인트로 영상 뒤에 댄서들과 등장한 아리아나 그란데는 자신감이 넘쳤다. ‘Be alright’로 포문을 연 그는 근사한 ‘보깅’(voguing) 춤으로 시선을 모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라이브를 선사했다. 듣던 대로 굉장한 댄스 라이브였다.


공연 전반에는 세트 리스트 구성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가장 큰 수확은 지난해 발매한 3집 [Dangerous Woman]의 전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새 앨범을 위한 투어라고 해도 일부 수록곡은 빠트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지점에서 아리아나 그란데는 확실한 승자였다. 동시에 기존 히트곡도 놓치지 않아 관객의 환호를 끌어냈다. 업 템포의 오프닝 ‘Be alright’에서 ‘Everyday’, ‘Bad decisions’, ‘Let Me Love You’로 이어진 첫 파트는 흐름의 측면에서도 우수했다. 한 편의 잘 짜인 쇼를 위해 선곡은 물론 완급 조절도 고려한 눈치였다.


공연 전반부의 하이라이트는 ‘One last time’이었다. 2014년 발매한 2집 [My Everything]에 수록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13위에 올랐던 노래는 지난 맨체스터 테러 이후 특별한 의미가 더해졌다. 구슬픈 곡조와 ‘마지막으로 너를 집에 데려다주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한 구절 덕분에 비극적 사건의 비공식 추모곡으로 사용된 것. 아리아나 그란데와 관객들은 슬픔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장관을 연출했다. 백드롭 영상도, 이렇다 할 세트도 없이 돌출 무대에 혼자 나와 노래하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2만 관중을 압도한 특급 카리스마




이날 무대에선 앨범과 공연의 타이틀 ‘위험한 여성’(Dangerous Woman)에 어울리는 메시지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중간 의상 교체 시간에 튼 영상에선 여러 포즈를 취하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강인한’, ‘현실적인’, ‘중심이 있는’, ‘연결된’, ‘강요하지 않는’, ‘여성스러운’, ‘심각하지 않은’, ‘자유로운’, ‘장난스런’, ‘감정적인’, ‘내 멋대로’, ‘원초적인’, ‘다정한’, ‘사나운’, ‘섹시한’, ‘부드러운’, ‘힘있는’, ‘신성한’ 등 다양한 형용사가 한글로 등장하다가 ‘인간’, ‘여자’라는 단어로 상영이 마무리됐다. 인간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수많은 성질을 갖고 있으며, 여자 또한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이는 곧 여성에 대한 관념을 멋대로 규정하지 말라는 일갈과도 같았다.


영리하고도 따끔한 경고 후엔 연이은 댄스곡으로 공연장을 달궜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스피닝 자전거를 타며 ‘Side to side’를 부르는가 하면, 국내 방송에서도 다수 소개되어 익히 알려진 ‘Bang Bang’에선 특유의 짜릿한 고음으로 열광케 했다. ‘Greedy’와 ‘Focus’의 강력한 펑크(funk) 레퍼토리로 이어지자 장내는 터질 듯했다. 더 크게 따라 불러달라는 독려에 따라 2만여 관중이 한목소리가 되어 공연장을 울렸다. ‘I don’t care’와 ‘Moonlight’에서 모든 관객이 휴대폰을 꺼내 일제히 플래시를 켜고 좌우로 흔들며 리듬을 타자 “와, 서울 관객 여러분 정말 아름다워요.”라고 화답하며 훈훈한 장면을 만들었다.


뜨거운 열기는 2집의 ‘Love me harder’와 새롭게 편곡한 ‘Break free’, 3집의 ‘Sometimes’와 ‘Thinking bout you’로 이어졌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맨체스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한 ‘Over the rainbow’였다. 무대 화면에는 이번 투어의 시그니처 컬러인 분홍색 바탕에 [Dangerous Woman]의 주요 소품으로 쓰인 토끼 귀가 달린 근조 리본이 나타났다. 스크린 앞에 선 아리아나 그란데는 노래를 열창하며 그날의 비극에 조의를 표했다. 그는 어찌나 몰입했는지 이따금 울먹이기도 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뒤바꾼 것은 그의 대표곡 ‘Problem’이었다. 펑키한 원곡을 날렵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탈바꿈한 그는 LED 봉을 든 댄서들과 합을 맞추며 색다른 감각을 뽐냈다. 객석의 흥분은 공식적인 마지막 곡 ‘Into you’에서 최고조로 치달았다. 지친 기색도 없이 격렬한 댄스 비트와 낙차가 큰 음계를 가뿐히 소화하자 고척돔은 거대한 클럽으로 변한 듯했다. 암전된 무대를 향해 앙코르 요청이 쇄도하자 다시 무대에 등장한 아리아나 그란데는 3집 앨범의 타이틀곡 ‘Dangerous woman’을 멋들어지게 부르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적수 없는 무대 위의 여걸




과연 최전성기를 맞이한 뮤지션다웠다. 홀로 1시간 30분을 이끌어가는 실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멘트가 많지 않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 특성상, 23곡을 연달아 부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는 보컬 퍼포먼스를 들려줬다. 댄서, 밴드와의 호흡도 수준급이었다. 결코 길지 않은 경력에도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며 공연을 주도하는 무대 매너에선 노련함까지 묻어났다.





히트곡과 신곡을 망라한 알찬 90분이었지만, 헤어짐은 늘 아쉬운 법이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장내에 불이 들어온 후에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예쁘다’, ‘귀엽다’, ‘섹시하다’ 각종 설왕설래의 와중에도 관객들은 하나 같이 무대의 완성도, 가수의 능력을 칭찬했다. 그날 경험한 그의 역량은 동일 선상에 둘만 한 가수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스물다섯의 맹랑한 팝 슈퍼스타는 그렇게 자신만의 진가를 똑똑히 증명해냈다.





 

Writer.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
웹진 '이즘(IZ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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