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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테이지] 공연 리뷰 - STING, 그 자체로서의 STING

2017.06.08





“남들이 뭐라고 하건 당신 자신이 되세요.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 ‘Englishman in New York’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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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베이시스트, 작가, 배우, 사회 운동가. ‘스팅’을 어떤 하나의 범주에 가둘 수 있을까. 그는 도무지 규격화되지 않는 사람. 스팅 그 자체이다. 삶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해서도 그의 항로는 ‘도전’과 ‘실험’을 향해 있다. “나는 순수하지 않은 혼합적인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록, 순수한 재즈에 흥미가 없다.”라는 그의 말처럼 펑크, 뉴웨이브, 월드뮤직, 클래식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길을 만들었다. 스팅은 직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구부러지거나 엇나감 없는 그의 보컬은 대중의 마음을 그대로 관통해버린다.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더 폴리스(The Police)’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까지 그래미상만 16회 수상했다. 2003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4년에는 케네디 센터가 주관하는 ‘공연예술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해 왔다. 그의 존재가 여전히 빛나는 것은 그가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박제된 전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그는 12집 <57TH & 9TH>를 발표했는데, 앨범은 매일 그가 걸어 다니던 스튜디오, 뉴욕 맨해튼 거리의 교차로 번호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음악은 탐색과 여행, 길, 모르는 무언가의 이끌림에서 우러나온 영감으로 채워졌다.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음악스타일만은 폴리스와 비슷하다. 펑크와 뉴웨이브 사운드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격앙된 스팅의 보컬, 게다가 레게 풍의 록은 1970년대나 80년대의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5번째 스팅의 내한 공연이지만 가장 상징적이었던 ‘폴리스 사운드’를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레전드의 존재감을 더욱 ‘크게’ 만드는 ‘작은’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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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옆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 건물은 스팅을 주제로 한 커다란 컨셉룸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통 공연장에는 아티스트의 포스터만 몇 장 붙어 있기 마련인데 벽면 선팅부터 특설부스가 설치되었다. LP와 티셔츠는 물론이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스팅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스팅의 공연이 펼쳐진 언더스테이지는 무대를 확장하면서 안전 문제로 단 400명의 인원만 함께할 수 있었다. 소규모의 리미티드 공연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특권이자, 색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길게 놓인 무대는 관객 또한 옆으로 늘어뜨려 뮤지션과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때문에 영상이나 다른 무대 장치는 불필요해보였다. 소리를 높이면 뮤지션에게 바로 전달되는 미니멀한 공간 자체가 이미 큰 이벤트였다. 지난 2012년 내한 당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크게 울려 퍼지던 그의 목소리를 가깝고 생생하게 접하는 순간이었다.


“공연장이 1960~70년대 거물 뮤지션들이 공연한 런던의 '마키 클럽(Marquee Club)'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러분의 열렬한 환호가 정말 환상적이네요.” 스팅은 공연 중에 이런 소회를 밝혔다. 그 또한 최근 아레나 공연을 위주로 팬을 만났던 터라 그 소감이 각별해보였다. 본토가 아닌 한국에서, 그것도 코앞에서 스팅을 본다는 것은 다시 있을지 모르는 진귀한 경험임은 틀림없었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시간의 조각들





“한국에는 처음 왔어요. 영어를 잘 알아들어줘서 고맙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짧은 머리에 스팅을 꼭 닮은 얼굴의 ‘조 섬너(Joe Sumner)’가 오프닝에 섰다. 그는 스팅의 여섯 자녀 중 장남이다. (스팅의 자녀 중 2명이 현재 음악을 하고 있다.) 목소리까지 아버지와 비슷한 그는 혼자 기타를 치며 무대를 채워 나갔다. 다음으로 나온 밴드는 컨츄리를 기반으로 한 ‘더 라스트 반돌레로스(The last bandoleros)’. 아코디언이 있는 이 그룹은 무대를 뛰어다니며 유쾌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공연장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뮤지션이 등장할 때가 아닐까. 두 뮤지션의 공연이 끝나고 ‘Shape of my heart’의 공동작곡자이자 스팅이 "내 오른손과 왼손이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도미닉 밀러(Dominic Miller)’가 모습을 나타냈다. 필 콜린스, 폴 사이먼, 플래시도 도밍고 등 쟁쟁한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최정상의 기타리스트가 악기를 연주하자 본격적인 스팅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폴리스의 마스터피스 앨범인 의 대표곡 ‘Synchronicity II’의 전주가 울려 퍼지고 스팅이 무대에 올라왔다. 칠순을 앞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단단하고 견고해 보였다. 그 때부터 2시간이 넘게 금속이 섞인 듯한 매력적인 목소리가 한국 관객을 향해 뻗어 나갔다.


스팅의 공연에는 도미닉 밀러 외에도 오프닝에 섰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했다. 그의 아들 조 섬너는 줄곧 뒤쪽에서 코러스와 탬버린을 담당했는데, ‘Shape of my heart’에서는 앞으로 나와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뒤이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노래 ‘Ashes to ashes’에서는 무대 가운데 서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 스팅은 아예 왼쪽 끝 조명 밖에서 아들의 노래를 지켜보며 베이스를 쳤다. 무대가 너무 가까워 조명 밖에 있는 그의 표정이 다 보였다. 거기에는 다정한 눈빛으로 아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한 아버지가 있었다.





두 번의 앙코르, 끝나지 않은 밤





스팅의 음악은 세월에 바래지 않고 여전히 세련되고 품격 있다. 다양한 장르가 융합하며 다채로운 색채를 내는 것도 큰 특징이다. 그는 언더스테이지에서 20곡이 넘는 노래를 라이브로 들려 주었다. 폴리스의 히트곡과 자신의 솔로곡 그리고 새 앨범의 수록곡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는 셋리스트였다. 잘 알려진 히트곡을 중간 중간에 배치해 그의 음악을 잘 모르는 관객들도 소외되지 않게 배려했다. ‘Englishman in New York’이나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과 영화 <레옹>으로 유명한 ‘Shape of my heart’에서는 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식적으로 마지막 곡이었던 ‘Roxanne’의 경우는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을 중간에 넣어 떼창을 끌어냈다.


관객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앙코르가 두 번이나 이어졌다. 첫 번째 앙코르 무대는 ‘Next to you’와 빌보드 팝 싱글차트 8주 정상을 지켰던 ‘Every breath you take’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나고 멤버들과 인사를 마쳤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라 ‘Fragile’을 부르며 진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공연 모습조차 스팅의 진중함과 많이 닮아 있었다. 말수가 많지 않고, 표정이나 행동이 크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See you again”이라는 것에 큰 위안을 받는다.





공연장을 나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존 공연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많았다. 스팅은 빛나는 과거와 진행형의 현재 그리고 불변의 밀도를 가졌다. 그 힘이 레게 머리를 한 청년부터 넥타이를 한 중년까지 모두 결집시킨 것이다. 2017년 5월의 마지막 날. 적어도 400명의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밤이 탄생했다.




 

Writer. 김반야
대중음악평론가
SBS '애프터클럽'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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