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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 소리와 빛이 엮어내는 압도적 아름다움 시규어 로스 공연 리뷰

2016.11.24


어느 추운 늦가을 밤 서울에서 시규어 로스(Sigur ros)는 조용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기적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공연 내내 연출해냈다. 풍부한 창의력, 그리고 추상적인 연출을 통해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구축해온 이들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아이슬란드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지금 공연이 벌어지고 있는 이 공간이 한국인지, 아이슬란드인지, 혹은 지구 밖에 존재하는 다른 어딘가 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때가 간혹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장내에 있는 이들은 이런 이상한 황홀감을 내내 공유했다.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무대현장



무엇보다 이번 공연이 특별했던 것은 지난번 내한과는 달리 현악기와 금관악기 파트 세션 멤버들을 일절 대동하지 않은 채 오로지 세 명의 멤버만으로 사운드를 꽉 채워냈다는 점이다. 때문에 멤버들은 각 곡마다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해냈다. 특히 드러머 오리 파우들 디라손(Orri Páll Dýrason)은 드럼과 그 옆에 배치되어있는 건반 사이를 바쁘게 오갔고, 특히 'Glósóli' 같은 곡에서는 드럼을 연주하면서 남는 한 손으로는 건반을 연주하는 진기한 퍼포먼스를 보여내기도 했다. 밴드 멤버들에게는 일종의 도전과도 같았겠지만 때문에 우리는 시규어 로스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따금씩 흐린 포커스의 흑백 화면으로 진행되는 중계 화면은 이들의 라이브 비디오 [Inni]의 콘셉트를 연상시켜내기도 했다. 중계 화면이 각 곡의 세계관에 맞춰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주의 기운을 담은 LED 배경화면, 그리고 놀라운 조명은 시네마틱함과 애수 어린 분위기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냈다. 청각적으로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신경이 열리는 경험이다.



아이슬란드 발(發) 추위를 서울에 몰고 온 시규어 로스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공연장 주변 풍경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는 일찍부터 많은 인파들이 몰렸다. 사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아이슬란드의 기후를 생각해본다면 추운 날씨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이런 추위가 반갑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갑작스러운 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공연장 앞 포토존, 그리고 머천다이즈 판매부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스산한 서울의 밤공기는 오히려 시규어 로스의 공연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유도해내는 역할을 했다.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공연장 주변 풍경



어두운 장내에는 음산한 배경음악이 깔렸다. 공연장 구석까지 꽉 들어찬 인파를 통해 현재 한국에서의 시규어 로스의 위치를 새삼 짐작해낼 수 있었다. 무대 위에는 -LED 장치로 추정되는-기둥들이 다수 설치되어 있었는데 공연을 보기 이전까지는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딱히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저녁 8시 3분, 기괴한 앰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장내가 암전 된다.



어둡고 미니멀한 전반부 편성, 그리고 이어지는 반전


자욱한 스모그와 함께 시규어 로스의 세 멤버들이 중앙에 모인 상태에서 첫 곡 'Óveður'가 개시됐다. 올해 공개된 이 신곡이 낮고 느리게 관객들을 잠식시켜나가는 와중 이들의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Starálfur'의 익숙한 피아노 음색이 이어졌다. 이때부터 보컬 욘시(Jónsi)의 활로 레스 폴 기타를 켜는 연주가 이어지며, 베이시스트 게오르그 훌름(Georg Hólm)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Sæglópur'의 중반부부터 비로소 모여서 연주하던 멤버들이 앞으로 나와 새로 자리를 잡는다. 특히 드러머 오리 파우들 디라손이 전자 드럼이 아닌 어쿠스틱 드럼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자 비로소 웅장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펼쳐진다. 이 무렵부터 관객들은 본격적으로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암흑 속에 존재하던 공연장은 순식간에 미지의 우주공간으로 확장된다.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무대현장



배경화면에 아이슬란드의 산맥들이 비치는 와중 'Glósóli'가 전개됐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산을 오르고 후에는 절벽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마치 하늘을 날아 오른 어린이들의 시점과도 같은 배경화면이 펼쳐지는 와중 심장박동과도 같은 킥 드럼이 내내 가슴을 때린다. [( )] 앨범의 인트로 트랙 'Untitled(Vaka)'에서는 붉은 점들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영롱한 건반이 화면을 수놓았다. 이 고요한 곡이 진행될 때는 관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가 내내 유지됐다. 특유의 투명함과 부유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욘시의 섬세한 목소리는 순수한 울림과 인간 내면의 감정적 충동이 뒤섞인 낯선 풍경을 만들어냈다.



오직 시규어 로스만이 가능한 비범한 세계관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무대현장



보컬 욘시가 단독 조명 아래 활로 포효하는 노이즈를 분출해내면서 'Ný Batterí'가 시작된다. 게오르그 홀름의 베이스 연주 시에도 그에게 단독으로 조명이 내려오곤 하는데, 드럼이 시작하자마자 강렬한 사이키 조명이 박자에 맞춰 곡에 임팩트를 더해냈다. 장대한 돌산을 오르는 화면 아래 무거운 드럼이 곡을 이끌어가는 'Untitled(E-Bow)'의 막바지에서도 욘시는 역동적인 피드백 노이즈를 만들어냈고 이에 관객들은 환호를 보냈다. 욘시의 신비한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Festival'에서 욘시는 한음을 끝없이 길게 노래해냈고, 이후 마찬가지로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물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듯한 육중한 베이스로 시작해 하우스 비트를 이어내는 'Yfirborð'에서도 이들은 인상적인 지점을 만들어낸다. 이번 공연에서는 유독 드럼의 킥과 베이스가 강조되어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태양의 코로나 입자같이 꿈틀대는 붉은 배경 아래 혼돈스러운 이펙팅, 그리고 강렬한 소리의 홍수를 쏟아낸 'Kveikur', 침묵을 깨우는 건반과 보잉이 서정적인 무드로 이끌어내는 'Fljótavík'가 끝나고 나서야 욘시는 처음으로 멘트를 한다. 그리고는 이들 대부분의 공연의 마지막 곡을 장식해온 'Untitled("Popplagið")'로 공연은 절정을 맞이한다. 배경화면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오른 모노리스 사이로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전개되는 장장 10여 분에 걸친 눈사태 같은 곡은 일그러진 화면, 그리고 아름다운 포화상태의 음량과 함께 장렬하게 산화한다.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무대현장



이 격정적인 카오스가 종료된 직후에는 이들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 'Takk (Thank You)'이라는 글자를 무대 뒤에 띄운 채 퇴장했던 멤버들이 다시 등장해 인사한다. 사람들의 환호가 끊이지를 않자 두 번에 걸쳐 입, 퇴장을 반복했고, 그러고 나서야 밴드는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밴드 멤버들은 만족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는 마치 농담처럼 1960년대 연주 곡 'Telstar'가 흘렀다. 이것이 토네이도(The Tornados)의 버전인지, 벤쳐스(The Ventures)의 버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규어 로스의 공연장에서 이런 곡이 깔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잠시 시규어 로스의 엔지니어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항상 'Telstar'를 장내에 틀어놓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에게 유머감각이라는 게 있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데뷔 이래 시규어 로스가 그려왔던 세계관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선언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무대현장



일절 별다른 멘트 없이 스트레이트로 공연이 전개되는 와중 관객들은 이 세계관에 완전히 잠길 수 있었다. 3인조 구성으로 모든 음향을 완수해냈고 이는 오히려 시규어 로스의 근간을 되짚어보게끔 하는 역할을 했다. 이 세 사람에 의해 표현된 소리에는 오히려 과거 라이브와는 다른 신선함 또한 감지해낼 수 있었다. 시규어 로스의 곡에 취해 눈물을 흘리는 이들에게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감상 따위는 어찌 보면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저 순수하게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울었다.



시규어로스 내한공연 무대현장



단순히 아름다운 어떤 광경 정도로 기억하고 싶지만은 않은 체험이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을 빼놓는 퍼포먼스였다. 나는 '치유'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런 감정을 초월해내는 무언가가 이 공연에 있었다. 이는 마치 어느 생명체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우주를 모두 포괄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아이슬란드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고온의 열을 내고, 식지 않은 채 꿈틀거리며 침잠해가는 광경과도 데자뷔 된다. 낯설지만 소중한 감각이 내내 유지되는 가운데 세상은 여전히 신비로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Writer. 한상철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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