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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 프레임에 전시된 환상의 세계, 영상으로 만나는 시규어 로스의 공연 변천사

2016.11.11


이것은 살아 있는 액자가 아닐까. 검색어를 입력하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비현실의 화면과 소리가 나타나 갑자기 우리를 5분 전과 다른 상태로 바꿔놓는다. 마음이 침착해지고,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아가 미움과 오만 같은 부끄러운 감정들을 다 버려야 할 것만 같고, 그러다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이란 무엇인가를 갑작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우리는 그들의 일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마음 깊게 담아둔 뒤 크게든 작게든 변화를 경험한다. 이 요동은 침묵 상태에서 진행된다. 몰입해 감상하고 감탄하느라 말을 잊는다. 그런 정적이야말로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장 당연하고 필연적인,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반응이다.


그렇게 우리를 혹은 나를 입 다물게 만들었던 몇 편의 공연 영상을 시대별로 모아봤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밴드의 감정과 상태를 헤아려 성격과 내용이 다른 공연을 선정하긴 했지만, 열거한 여덟 개의 영상이 시규어 로스 음악의 넓이와 깊이를 완벽하게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걸 제대로 알려면 실제 공연을 봐야 할 것인데, 곧 그렇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내한 공연을 앞둔 시점, 이것은 그냥 참고 차원에서 정리하는 밴드의 과거다. 가이드 혹은 공감의 기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했지만,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따로 있다고 다시 말하고 싶어진다. 유튜브라는 작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시야가 탁 트이는 무대 근처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되었다

초기 시절의 클럽 공연(1999,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처: Youtube



욘시는 이전부터 다양한 밴드를 전전하며 활동했고, 시규어 로스의 데뷔 앨범 'Von'은 1997년 나왔다. 밴드가 세계적인 입지를 갖게 된 건 두 번째 앨범 'Ágætis byrjun'(1999)이 나온 이후다. 그 무렵 영국 음악매체 ‘NME’가 앨범의 대표곡 ‘Svefn-g-englar’를 재빨리 이주의 싱글로 점찍었고, 2000년대 인터넷을 통해 국경 없이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밴드는 전과 다른 입지를 갖게 됐다. 그런 물결을 타고 이런 귀한 자료 또한 누군가 쌈지에서 꺼낸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이건 초기 시절의 밴드가 자국의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한 기록이다. 어찌어찌 이 공연 영상 파일을 구해 유튜브에 등록한 당사자조차 1999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한 공연장이라는 것 말고는 공연의 디테일을 잘 모르는 상황이고, 영상 아래의 댓글을 살펴보면 시규어 로스의 초기 시절 공연을 봤던 억세게 운 좋은 이들의 증언이 이어져 역사적인 순간을 나눈 팬들의 교감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고서야 시규어 로스가 이제는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서 공연을 할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다.



DVD에 담은 품격의 공연

Gítardjamm(2003 도쿄 국제포럼홀)



출처: Youtube



스마트폰이 됐든 고급 장비가 됐든 어쨌든 촬영해 공연의 순간을 나누는 개인을 이제는 찾기 어렵지 않지만, 2005년 유튜브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쉽지 않았을 방법이다. 따라서 그 무렵의 공연 영상이란 방송이나 2차 콘텐츠 제작 등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전문 촬영팀이 다녀갔던 기록에 한정된다. 다행히 시규어 로스에게도 그 기록이 있다. DVD로 출시된, 2003년 도쿄 국제포럼홀에서 열린 공연의 일부가 유튜브에 등록되어 있다.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에 준할 만큼 대다수를 숨죽이게 하는 품격의 무대, 그리고 공연에 대한 흥분이나 만족을 침묵으로 표현하는 사려 깊은 청중들이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한 DVD는 시규어 로스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긴 것 같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국제적 명성을 바탕으로 이력을 쌓은 대부분의 뮤지션들에게 이런 영상 제작 이벤트란 때 되면 앨범이 나오는 것처럼 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시규어 로스도 일단 동참하긴 했다. 밴드 스스로 공연의 내용을 점검하고 기록을 보관하는 동시에 팬 서비스 차원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러나 앞으로 이렇게 판에 박힌 영상을 만들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곧 몇 년 지나 도식화된 공연 촬영물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아무도 없었던 고향에서

Heysátan(2006, 아이슬란드 셀라우르달르)



출처: Youtube



2004년 시규어 로스는 새로운 영상을 논의한다. 막연하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던 기획 단계에서 밴드의 키보디스트 샤르탄이 아이슬란드의 최북단에서 공연하는 건 어떨까 제안했는데, 결국 여기 살이 붙어 3년 뒤 아이슬란드 전역을 배경으로 하는 역대급 작품이 나왔다. ‘집으로’ 혹은 ‘집에서’를 뜻하는 공연 다큐멘터리 'Heima'(2007)다. 2006년 진행한 실험적인 마을 공연을 축으로, 밴드와 밴드를 둘러싼 다양한 스태프와 함께 시규어 로스의 음악적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Heima'는 시규어 로스가 자국의 청중들과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이슬란드의 광대한 자연을 스케치하는 일에 공을 들인다. 그들의 공연은 때때로 관객을 만나지 못한다. 누구도 찾아오기 어려운 현장에서 노래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공허할지 모를 공연을 앞두고 욘시는 설명한다. “사람 많은 대도시에서 공연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래서 고향의 드넓은 공간으로 돌아와 잠시나마 쉴 수 있다는 게 참 좋네요.” 공연의 배경은 광대한 자연이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소리를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만 같다.



모닥불 피워놓고

Olsen Olsen (2006, 아이슬란드 옥스나다루)



출처: Youtube



공연 다큐멘터리 'Heima'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시규어 로스는 공연의 성격을 두 가지로 나눴다. 일단 전제는 모든 공연이 아이슬란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어떤 공연은 사전에 공지됐고 어떤 공연은 그렇지 않았다. 앞서 거론한 ‘Heysátan’이 후자라면, 아이슬란드 북쪽의 계곡 마을 옥스나다루에서 선보인 ‘Olsen Olsen’은 예고가 된 만큼 드물게 북적거리는 공연의 풍경을 보여준다. 공연 소식을 접한 뒤 두꺼운 옷을 챙겨입고 친구와 혹은 가족과 함께 마을 중앙에 찾아온 동네 주민들은 어딘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감상한다. 대다수가 챙긴 두꺼운 코트와 털모자가 대변하는 것처럼 많이 추웠을 것이다. 그래도 따뜻했을 것이다. 동네의 마을 주민이 남녀노소 불문으로 참여한 이 아름다운 공연을 뒤늦게 작은 프레임을 통해 확인하는 동안, 훌륭한 음악이란 개개인이 발견하기 전에 실은 공기처럼 평등하게 주어진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가 작은 지역 사회를 통해 다시 일깨워준 진실이다.



시규어 로스도 사람이다

Untitled(Njósnavélin)(2007, 영국 더 컬쳐 쇼 스튜디오)



출처: Youtube



시규어 로스는 대체로 웅장한 전개를 즐긴다. 긴 호흡을 바탕으로, 작은 소리로 시작해 소리의 몸집을 불려 절정을 향한다. 많은 뮤지션이 이 같은 점층 구조로 쾌감을 형성하는 일에 익숙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달리면서 절정에 도달한다면 시규어 로스는 질주가 아니라 승천하는 인상이다. 가끔씩 적절하게 활용하는 침묵 또한 비행하는 과정의 일부로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극적인 대서사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작은 공간에서 제한된 인원으로 생생한 소리를 구성하기도 한다. 2007년 영국 BBC의 프로그램 ‘더 컬쳐 쇼’에서 선보인 아담한 공연이 대표적이다. 인간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고 다뤄오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해도, 그들도 결국은 사람이다.



꽃가루 휘날리며

Gobbledigook(2008, 스페인 베니카심 페스티벌)



출처: Youtube



2008년 발표한 다섯 번째 앨범 'Með suð í eyrum við spilum endalaust'는 침착한 감상을 유도하는 기존의 앨범 구성 방식과 달리 처음부터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화사한 비트와 멜로디가 쏟아지는 첫 곡 ‘Gobbledigook’ 덕분이다. 당시 공연 또한 노래에 깃든 긍정과 희망의 인상을 살리는 방향으로 연출해 주로 마지막곡으로 배치했다. 공연 내용을 뜯어보면 박수까지 포함한 긴박한 흥의 리듬으로 시작하고, 공연의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꽃가루가 날린다. 사실은 진짜 꽃이 아니라 꽃처럼 느낄 만한 종이다. 어찌어찌 이 무렵 시규어 로스의 공연을 유럽 한 복판에서 보게 됐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봄의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실체는 불분명하나 뭔가 대단히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하고 났더니 그저 다리 힘이 풀리고 가슴은 두부가 되더니 그만 뭉클해졌다. 시규어 로스는 심각할 때가 더 많지만, 이따금씩 이렇게 밝고 찬란한 노래로 성격이 다른 감동을 준다. 이 경쾌한 돌변은 이후 욘시의 솔로 앨범으로 이어진다.



멀지 않은 장소에 남겨 둔 가까운 기억

[공연] Hoppípolla + Með Blóðnasir(2013, 서울 올림픽경기장)



출처: Youtube



2013년 그들은 마침내 여기 도착했다. 욘시의 솔로 공연(2010년 서울 악스홀)에 이어 밴드 전체가 내한해 새로운 청중을 만났다. 생각보다 유튜브에 당시 공연을 업로드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간 장비가 얼마나 발전했으며 플랫폼 접근성이 얼마나 높은가를 따지기 전에 이건 굶주림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문화예술적으로 빈곤한 땅에 늦게나마 찾아온 애정의 대상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동시에 이 특별하고 귀한 경험을 기록하고 보관해두려는 당연한 집단적 반응이 아닐까. 어쨌든 곧 이어질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앞둔 상황에서, 그 많은 개인의 영상 가운데 화질과 소리가 꽤 준수한 영상을 하나 골랐다. 4분 30초쯤 관객과 소통하면서 노래하는 순간은 참 뜨겁고 아름답다.



[공연] Hafsól(2016, 영국 글라스톤베리)



출처: Youtube



시규어 로스의 올해 하반기 일정은 9월과 10월의 북미 공연으로 시작한다. 11월부터는 아시아 투어에 돌입해 서울을 시작으로 홍콩, 싱가포르, 타이페이에 들를 예정이다. 공연의 셋리스트도 나왔고, 미국과 캐나다 관객의 일부가 유튜브에 몇 개의 영상을 올렸다. 밴드가 직접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공연을 중계하기도 한다. 쭉 살펴본 바 촬영 상태가 아주 훌륭하다고 말하기 어려워 꽤 고민한 끝에 그냥 올해 하반기 투어와 좀 무관한, 올 6월 영국 글라스톤베리 공연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건 일종의 열망 혹은 망상으로부터 비롯된 선정이다. 두 번째로 찾아온다 하니까 괜히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는 것인데, 언젠가는 글라스톤베리처럼 우리도 탁 트인 환경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Writer.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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