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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 본능으로 표현하는 미지의 세계, 시규어 로스 그리고 욘시

2016.10.18


시규어 로스의 음악에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은 노래를 관통하는 남다른 주제가 되기도 한다. 데뷔 앨범에 실린 ‘18 sekúndur fyrir sólarupprás’에는 18초간의 정적이 있는데, 노래의 제목은 ‘해 뜨기 전의 18초’라는 뜻이다. 고요한 자연의 나라 아이슬란드 출신이기에 가능한 상상력이란 이런것일까. 그들은 갑작스러운 침묵을 즐겨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리를 채우는 일에도 능하다. 특히나 프론트맨 욘시는 전형과 다른 소리를 만드는 신비로운 발명가 이미지에 가깝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4 시규어 로스 이미지



30만 인구의 아이슬란드로부터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시. 그는 깁슨사에서 나온 레스 폴 기타를 쓴다. 기타리스트에게 있어 달리 새로울 것 없는 장비지만, 기타와 함께 쓰는 이색 도구 덕분에 그의 연주는 다른 차원으로 간다. 그는 첼로를 켤 때 쓰는 활을 들고 무대에 선다. 그리고 기타의 현에 비벼 소리를 낸다. 아울러 다른 클래식 연주자 못지않게 송진을 챙긴다. 활털에 수시로 문질러 현과 활의 마찰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의 음악은 때때로 클래식처럼 들린다. 클래식의 문법을 때때로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긴 호흡의 연주로 청중을 숨죽이게 한다.


한편 그의 목소리는 가늘다. 1994년 그의 밴드 시규어 로스가 틴팝에 최적화된 레이블 배드 테이스트를 찾았던 이유이기도 한데, 욘시의 아름다운 가성이 소녀들에게 먹힐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막 이십 대에 접어들었던 당시의 욘시가 과연 소녀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흔들었다는 것은 안다. 시규어 로스의 마을 공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heima'가 증명하듯 그들은 아이슬란드 인구의 자부심이고, 그들은 지난 10여 년간 고향 바깥의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상의 반응이란 환영과 비슷했다. 욘시는 신비로운 소리와 함께 현실 세계에 도착한 딴 세상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30만, 그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따르는 ‘좋아요’는 170만이 넘는다.



출처: Youtube



동생을 울리고 세상을 울리다


이런저런 밴드에서 연주를 연마하던 욘시는 1994년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다. 그의 여동생 ‘시규어로스’가 막 태어났을 무렵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꽤 흔한 이름으로, 욘시는 동생의 이름을 둘로 쪼개 밴드와 나눴다. 시규어는 승리, 로스는 장미를 뜻한다. 1997년 첫 앨범이 나오자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 욘시는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데뷔 앨범을 틀었다. 부모는 겁에 질렸다. 꼬마 동생 시규어로스는 심지어 울었다. 소란의 청음회를 마치고 그가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자 그때야 어머니가 다가와 잘 들었다는 반응을 돌려줬다고 그는 회고한다. 시규어 로스의 데뷔 앨범 'Von'의 첫 곡에선 비명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온다.


2집 'Ágætis Byrjun'(1999)이 나오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욘시는 당시의 변화를 두고 곡을 쓰는 시간은 훨씬 줄었고, 대신 반복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데뷔 앨범에 비해 소리는 훨씬 부드러워졌고,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세상은 그들을 찾고 불렀다. 2년에 걸쳐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그들은 전 세계적인 열광의 대상이 되었다. 라디오헤드 같은 뮤지션도 찬양의 행렬에 동참했고, 훌륭한 음악에 민감한 감독 카메론 크로우는 새 작품 '바닐라 스카이'를 준비하면서 시규어 로스와 접촉을 마쳤다. 밴드를 둘러싼 흥분은 꽤 오래 지속됐다. '( )'(2002), 'Takk...'(2005), 그리고 'Með suð í eyrum við spilum endalaust'(2008)에 이르기까지 가사의 의미는커녕 앨범의 제목조차 읽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을 세상은 본능적으로 받아들였다.



출처: Youtube



누군가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두고 “천국에서 신이 흘리는 금빛 눈물”이라 썼다. 밴드의 레이블이 홍보 문구로 취한 어느 팬의 표현이다. 욘시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뒤 치유에 관한 많은 반응을 접했다. 차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가 시규어 로스를 듣고 슬픔에서 회복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욘시는 이런 반응을 좋아한다. 음악이 인간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에서다. 반면 아이슬란드라서 이런 음악이 나온다, 북유럽적이다, 포스트 록이다, 모과이와 비슷하다 식의 규정은 카테고리를 구분하려는 미디어의 강박으로 본다. 오늘날의 음악은 과거의 관습으로부터 어떻게든 더 멀리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흔히 천상의 사운드로 표현된다. 정작 그들은 이런 방식의 표현을 거부하지만, 아이슬란드라는 신비의 땅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자의 목소리로 들린다. 때때로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만 같다. 굉장히 열광하거나 지루하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세상의 즉각적인 반응이 이를 대변한다. 욘시에 따르면 이는 전혀 계획되지 않은 결과다. 그저 밴드가 겪었던 상황과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해 엮을 뿐, 정작 욘시는 아이슬란드의 주류 음악은 물론 유사 계열로 묶이는 아티스트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참고 대상 없이 쓰고 부른 자연스러운 노래가 사람들을 여러 가지 의미로 울렸다.



출처: Youtube



새로운 언어의 발명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결성된 시규어 로스는 대부분의 곡을 아이슬란드어로 쓰고 부른다. 그런데 가끔은 이것이 과연 언어일까 싶은 노래가 있다. 데뷔 앨범 'Von' 당시엔 몇 곡만 그렇게 불렀다가 '()'에 와서는 전 곡을 그렇게 불렀다. 그들은 음악계의 톨킨일까.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자 들일까. 어쨌든 그들만의 언어는 ‘희망어’라 불린다. 희망어는 시규어 로스를 보다 초월적인 존재로 굳히는 일종의 날개 역할을 한다. 아이슬란드 출신에 전형에서 벗어난 초현실의 소리를 설계한 데다 마치 주술사처럼 독자적인 언어를 가진 존재로 인식될 만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욘시에 따르면 그 언어는 'Von'을 작업할 당시 가사가 결정되기 전에 웅얼웅얼 노래한 것이 발단이다. 그런데 그렇게 노래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결과 또한 나쁘지 않아 즉석에서 '홉랜딕(hopelendic, 혹은 아이슬란드어로 vonlenska로 표현된다)'이라 이름 붙였다. 앨범의 제목에서 착안했고, ‘Von’은 희망을 뜻한다. 명확한 단어와 의미가 없고 문법 또한 없다는 점에서 홉랜딕을 언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욘시의 입장도 그렇다. 노래는 나왔는데 가사가 미완일 경우 대부분의 가수가 허밍으로 노래하는 방식에 비유한다. 욘시의 선택이 특별했다면 체계를 갖추지 않은 독단의 언어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뜻 없이 흐물거리는 발성에 이름 하나를 제대로 붙였기 때문이다. 그저 옹알이에 지나지 않는 습관은 그들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발상은 생각보다 싱겁지만, 그런 언어를 선택하고 반복한 욘시의 철학은 새겨들을 만하다. 욘시는 이것이 전형적인 가사 쓰기의 도구가 아니라 사운드의 일종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곡을 쓰는 일에 있어 상당한 자유를 준다고 말한다. 음과 말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의 작업 당시 가사를 준비하면서 영어를 포함해 여러 언어가 고려되었지만, 그들은 결국 통째로 홉랜딕을 쓰기로 결정했다. 앨범의 제목부터 노래의 제목까지가 텅 비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의 4번 트랙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그리고 36초간의 침묵이 이어진다. 욘시에 따르면 앨범을 두 가지 챕터로 구분해 구성했고(달콤함과 무거움), 불친절한 마무리와 공백은 그가 선택한 전환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같은 실험적 구성에 적합한 언어를 욘시는 이미 갖고 있었다.



출처: Youtube


언어는 중요할 수 있지만, 모든 언어가 이해될 필요는 없다고 욘시는 믿는다. 다른 악기와 마찬가지로 목소리는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인데, 악기 또한 납득이 되는 말없이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욘시의 불가해한 언어를 기꺼이 받아들인 시규어 로스의 멤버 게오르그 훌름은 이를 화가에 비유한다. 모든 화가가 명확한 계획을 통해 작품에 이르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가도 나중에야 그의 작품을 발견한 누군가가 이것은 여름의 풍경이라고 규정해주면 의미가 생긴다. 그들의 작업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목적 없이 몸에 익은 것들을 표현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욘시의 모험과 시규어 로스로의 복귀


시규어 로스는 그때그때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 멤버 일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서 밴드는 차선이 되었고, 욘시는 새로운 프로젝트 활동으로 바빠졌다. 우선 그의 오랜 연인이자 미국 출신의 비주얼 아티스트 알렉스 소머스와 엠비언트라는 보다 실험적인 세계로 뛰어들었다. 둘은 함께 사진집을 냈고 전시를 이어갔으며 간간이 싱글을 발표하다가 데뷔 앨범 'Riceboy Sleeps'(2009)를 내놨다. 공동작업은 동반자의 세계를 바꿔놓았다. 알렉스는 2010년 이후로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시규어 로스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의 앨범에 부지런히 이름을 남기고 있다.



출처: Youtube



욘시는 시규어 로스 활동을 중단하면서 보다 사교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밴드 시절에 비해 훨씬 명랑하고 찬란한 데뷔 앨범 'Go'를 발표했고,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작품에 그의 노래를 앉힌 것도 이례적인 결정이다. BBC의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수준 높은 영화와 시리즈들이 그의 음악을 원해왔지만, 드림웍스사의 애니메이션 팀마저 그를 탐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욘시는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그는 시규어 로스로 돌아왔고, 복귀의 내용은 전에 비해 좀 무겁다. 할 말이 많았는지 'Valtari'(2012)와 'Kveikur'(2013)까지 연달아 앨범이 두 장이 나왔다.


지난 20여 년간 밴드를 둘러싸고 많은 것이 변했다. 멤버도 변했고 각각의 커리어와 인생의 일 순위도 달라졌다. 그러나 작업에 돌입할 때면 모든 것이 회복된다. 재회한 시규어 로스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전형에 관심이 없다. 세계적인 밴드로 살아가면서 영어로 노래하는 일도 없다. 20년 밴드의 내공이자 확신일까. 밴드는 여전히 음악적 토론을 별로 하지 않는다. 전과 구분되려면, 전과 비교해 더 발전한 결과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할 새도 없이 그때그때 얻는 바를 본능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감수성과 상상력, 그리고 경험에서 비롯된 기술이 결합된다. 그 음악이 어떻게 나왔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능숙하지 않다. 진짜 모르는 일이고, 그저 마법 같은 것이라고 욘시는 답한다.



출처: Youtube



그 마법은 우리도 느낀다. 여전히 욘시와 그의 동료들은 긴 호흡으로 웅장한 세계를 구축하고, 우리는 그 세계가 과연 아이슬란드라는 대자연인가 종교인가 아니면 미지의 영역인가를 평온하게 고민한다. 이따금씩 두근거린다. 욘시가 접한 반응이 말해주는 것처럼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풀어진 마음을 붙잡고 난 뒤에는 다시 질문이 시작된다. 이것은 주류 음악의 도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극단적인 해체의 산물일까, 아니면 현실과 화해하라는 영적인 계시일까.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다시 안식에 이른다. 명상의 시간이 돌아왔다.





Writer. 최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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