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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장엄한 순수의 인도자 시규어 로스(Sigur Ros)

2016.08.30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4 시규어 로스 이미지



신비하면서도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이슬란드 출신 록 밴드가 바로 시규어 로스(Sigur Ros)다. 깨질 것 같이 섬세한 격정으로 가득한 환상의 소리 덩어리,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욘시(Jónsi)의 천사같이 투명한 고음의 목소리는 음악을 듣는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냈다. 활로 연주하는 기타의 찬란한 노이즈는 마치 거대한 폭포, 혹은 눈사태처럼 느리고 거세게 휘몰아쳐갔다. 결국 종래에는 감미로운 행복감을 전달해내면서 이들은 유일무이한 소리 세계를 형성해낸다. 음악을 듣는 이들의 심층부에 잠입해낸 소리는 오히려 어두운 부분을 부드럽게 감싸냈다. 이처럼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일종의 정화 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아이슬란드의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풍경을 떠올리게 했고, 때문에 듣는 이들에게 잠시 현실을 잊게끔 유도해냈다. 사실 이들의 음악적 면면을 분석해보면 다양한 밴드들의 특징을 합쳐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곤 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눈부신 기타 노이즈, U2의 의기양양한 찬가적 멜로디, 로우(Low)의 슬로코어, 그리고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예술 지향적인 실험 정도를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음악은 이 지구 상의 다른 그 어떤 음악과도 비슷하게 들리지 않았다.



시규어 로스의 지지자들


알려진 대로 시규어 로스는 시대를 초월한 다채로운 예술가들과 협업을 이뤄내 왔으며, 실제로 현존하는 아티스트들 중 이들의 팬을 자처하는 이도 적지 않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Thom Yorke)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자신들의 밴드에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며, 같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뷰욕(Björk)이 시규어 로스에 대해 "이 밴드를 주신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한다"고 말했던 것은 무척 유명하다. 현대무용의 전설로 불리는 안무가이자 무용수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은 자신의 공연에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사용했으며, 롤링 스톤 매거진 기자 출신으로 수많은 음악 영화들을 만들어온 감독 카메론 크로우(Cameron Crowe) 역시 자신의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 시규어 로스의 곡들을 삽입하고, 이후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는 아예 보컬 욘시에게 음악을 맡기는 등, 밴드의 충실한 팬임을 세간에 각인시켰다. 사진계의 거장 라이언 맥긴리는 시규어 로스의 5집 앨범 표지를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Valtari] 비디오 협업 프로젝트 'Varuð'의 비디오 연출에도 참여하는 등 꾸준히 시규어 로스와의 다양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욘시가 창조해낸 '희망어(Hopelandic)'


무엇보다 시규어 로스의 노래 제목, 그리고 가사는 영어가 아닌 아이슬란드어, 심지어는 보컬 욘시가 만들어낸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망어'로 이루어져 있다. 기호를 제목으로 채택한 앨범 [( )]의 경우 수록 곡들의 노래 제목조차 없이 발매되기도 했다. 실제로 욘시는 매번 악기 녹음이 거의 완성될 무렵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한다는데, 결국 음악 자체에 영향받은 내용들을 작성하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듣는 이가 아이슬란드 어를 모르더라도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왠지 모르게 가사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가사의 의미를 모른 채 음악을 듣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욘시가 완성된 연주곡 만을 듣고 가사를 떠올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고, 때문에 언어의 장벽과는 상관없이 피부로 시규어 로스의 노래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동질감이 존재한다.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매김해낸 시규어 로스는 자연의 웅장함을 소리로 표현해내곤 했지만 [Takk...] 이후의 작품들은 그 대자연 속의 인간, 그리고 행복을 그려내려 했다. 사실 시규어 로스 이전 북유럽은 주로 메탈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장대한 자연 속에서 탄생한 신비로운 음악의 발현지라는 이미지로 완전히 새롭게 정착해냈다. 유독 섬나라 특유의 분리된 외로움이 무의식중에 이들의 노래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음악적 영역을 확장시켜내는 라이브 비쥬얼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그려지지만, 이들의 라이브에서도 이런 시각적 효과들은 유독 빛을 발한다. 공연장 뒤에 배치된 LED 화면에서는 때로는 우주를, 때로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도형들이 깔리곤 하는데, 이는 공연을 보는 이들을 더욱 감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미궁으로 빠져들어가게끔 유인해낸다. 마치 오로라 성운과도 같은 첨단 영상과 조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해온 이들은 매 투어마다 컨셉을 변형해왔다. 최근 투어의 경우 무대 위에 몇몇 프레임들을 세워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세계관으로 업데이트해내고 있다.



출처:youtube



검은 마그마처럼 꿈틀대는 흑백의 라이브 [Inni]


밴드의 라이브가 정평이 난 가운데 2011년도에는 라이브 실황을 담아낸 [Inni]를 발매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진행되는 이 라이브 실황 비디오는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등을 다뤄온 빈센트 모리셋(Vincent Morisset)이 연출해냈다. 시규어 로스의 서정적인 라이브 실황을 마치 분출 직전의 생동감으로 가득한 아이슬란드 해저 용암처럼 포착해냈다. 빛과 어둠으로 창조된 이 신비로운 영상 또한 내한 공연을 보러 가기 이전 한 번쯤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Inni]는 제6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출처:youtube



지구상 마지막 남은 낙원, 아이슬란드의 절경을 배경으로 한 라이브 [Heima]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두고 '아이슬란드 대지 그 자체'라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아이슬란드의 자연 경관 속에서 감행한 라이브 비디오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2006년 여름 2주 동안 40명의 스텝과 함께 자신들의 고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공연과 촬영을 이어나갔다. 이 비디오를 연출한 애니메이션 감독 딘 드블루아(Dean DeBlois)는 이후 [드래곤 길들이기]를 만들게 되고, 작품의 주제곡에 욘시를 기용하게 된다.


시규어 로스의 드라마틱한 음악과는 정반대로 카메라는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는 차갑게 밴드, 그리고 자연 경관을 관찰한다. 영상 속의 아이슬란드 관객들 또한 크게 호들갑 떨지 않으며 개를 끌고 와서, 혹은 앉아서 오이를 먹으며 무덤덤하게 시규어 로스의 공연을 관람한다. 밴드 역시 차분히 연주하는 와중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카메라가 한번 뒤로 빠져 이 인간 군상들을 작게 담기 시작하면 역동적인 특수효과 따위를 무색하게 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그 풍광 속에 비친 너무도 작은 존재인 인간의 초라한 민 낯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이 노래들과 별개로 감동하게 된다. 그 어떤 특수효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신이 내린 보석 같은 결과물로써 돌출됐다.



출처:youtube



출처:youtube



흥미로운 참여진들과 결과물로 무장해낸 [Valtari] 비디오 협업 프로젝트


2012년도 무렵 앨범 [Valtari]를 발표할 당시에는 '기묘한 영상 실험(The Valtari Mystery Film Experiment)' 이라는 타이틀의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시규어 로스 스스로가 선택한 영상 작가들에게 각각 동등한 예산을 전달한 이후 이 앨범에서 느낀 그대로를 자유롭게 영상작품으로 표현할 것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밴드는 감독들에게 그 어떤 지시사항이나 노래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으며, 단지 영상을 제작하는 이가 노래에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해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야심 찬 프로젝트인 만큼 쟁쟁한 참여진들이 함께 해냈다. [헤드윅], [숏버스]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몰이를 해온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 [라스트 홈] 등을 만든 재능 있는 이란 출신 감독 라민 바흐라니(Ramin Bahrani), 그리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등이 비디오를 연출했고, 엘르 패닝(Elle Fanning), 존 호크스(John Hawkes), 그리고 샤이아 라보프(Shia LaBeouf) 등이 비디오에 출연해냈다. 시규어 로스의 앨범 [Valtari]와 영상작가들의 시너지 효과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이 비디오들을 순차적으로 감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출처:youtube



출처:youtube



2016년 투어 직전 발표된 신곡 'Oveður'


시규어 로스는 올해 투어에 앞서 2013년 이후 첫 신곡 'Oveður'를 공개했다. 전작 [Kveikur]에 이어 다시금 일렉트로닉 한 효과들을 활용해내고 있는 곡은 느리고 어둡게 전개되는데 이는 마치 시규어 로스의 새로운 한 발자국을 선언하는 듯 비졌다. 곡의 비디오는 비욘세(Beyonce), 마돈나(Madonna) 등과 함께 작업해온 요나스 애컬런드(Jonas Åkerlund)가 담당해냈다. 비디오만 보고도 감독을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요나스 애컬런드 특유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화면들로 채워내고 있는데, 의외로 시규어 로스의 신비로운 사운드와 맞물려지면서 기이한 감상을 제공해낸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네스 반도에서 댄서이자 안무가인 에르나 오마스도티르(Erna Ómarsdóttir)의 몸짓이 작품에 이상한 생기를 더해낸다. 비디오가 공개된 직후 24시간 동안 약 50만 회의 조회 수를 달성해내기도 했다.



출처: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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