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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McCARTNEY] 살아있는 전설의 음악적 유산이 농축된 지상 최대의 로큰롤 쇼 Out There Tokyo Dome

2015.04.24



Everybody Out There


2013년 11월 11일부터 도쿄, 오사카, 그리고 후쿠오카를 거쳐 약 26만 명을 동원한 첫 [Out There] 투어 당시 폴 매카트니는 공연 말미에 일본 팬들에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그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매번 '일본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때문에 티켓은 매번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런 우려와는 달리 1년 후인 2014년 5월 다시금 폴 매카트니의 일본에서의 일정이 잡혔지만 알려진 대로 건강상의 문제로 일본 일정은 물론 첫 내한공연 일정마저 완수해내지 못한 채 돌아가버렸다. 팬들은 황망해 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냥 폴 매카트니가 무대 위에서 2시간 동안 누워만 있어도 공연장을 찾겠다는 글 마저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1년 후, 약속대로 다시 일본과 한국 공연일정을 확정 지었다. 이번 일정의 첫 공연지인 일본 오사카에서의 쇼에서 총 39곡의 노래들을 쏟아냈던 폴 매카트니는 오사카 때와 동일한 셋리스트로 4월 23일 도쿄 돔 공연을 가득 채웠다. 그는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한번 더 도쿄 돔에서 공연한 최고령 뮤지션의 신기록을 갱신해냈다. 당연하게도 장내에는 충성스러운 팬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일본 팬들은 거의 경쟁하다시피 온몸으로 자신이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의 팬임을 표현해내려 애를 썼다.



 



양쪽에 위치한 수직의 스크린, 그리고 드럼세트 뒤의 대형 스크린이 기본으로 무대에 설치되어 있었다. 폴 매카트니의 클래스답게 공연 내내 어디에서 나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각종 무대 장치들이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등장하곤 했다. 이는 직접 공연장에서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다. 무엇보다 아레나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는 큰 규모의 박력 있는 사운드, 그리고 돔 구장 특유의 에코가 걸린 어쿠스틱 사운드가 편안하게 장내에 울려 퍼졌다.


뻔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꿈같은 라이브였다. 현장은 생생했지만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이미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전설이었던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는 언제나 먼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가 이렇게 바로 눈 앞에서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다는 상황이 지금 나 자신에게 있어 굉장히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그저 이 공간 안에 그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이처럼 거대한 재능을 직접 목격하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여느 나이 먹은 가수들과는 달리 원곡의 키 그대로 노래하고 있었다. 게다가 레코딩된 원곡의 편곡에 최대한 가까이 연주해내려 했다. 우리는 이 라이브 스테이지에서 일말의 따뜻한 일체감 같은 것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팬들이 수십, 수백 번씩 돌려 들었던 폴 매카트니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네 명의 세션 멤버 각각의 연주 또한 확고하게 그를 받쳐내고 있었다. 이들은 폴 매카트니와 10년 이상을 함께해오고 있는 중이다. 전 멤버들이 코러스를 완수해냈고 이들의 노래에는 일말의 흔들림 조차 없었다. 이 거장을 백업해내려면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노래까지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피부로 감지했다. 특히 거구의 드러머 에이브 라보리엘 주니어의 경우 훌륭한 코러스는 물론 확실히 비틀즈 시대의 그루브 또한 장착해내고 있었다. 폴 매카트니의 각각의 시대를 재연하는 데에 있어 이들의 연주는 가히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었다.


7시 정각, 폴 매카트니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왼손잡이 호프너 베이스가 양쪽 영상에 비춰진 이후 폴 매카트니가 호프너 바이올린 베이스를 매고 무대 위에 등장했다. 그의 첫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마자 관객들의 떨림 또한 고스란히 감지됐다. 이 위대한 여정의 서막을 알리듯 환상적인 'Magical Mystery Tour'로 공연이 시작된다.



거장답지 않은 사려 깊음, 그리고 헌정




폴 매카트니는 유독 일본어로 멘트를 하려 노력했는데 영어로 말할 때는 옆에 번역된 자막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등 거장답지 않은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기본적인 인사말은 물론 심지어는 곡을 설명하는 도중 '조지에게 바친다', '존에게 바친다' 같은 멘트까지 직접 일본어로 말했는데 심지어 후쿠오카와 오사카에서는 사투리까지 직접 구사해냈다고 한다. 곧 다가올 내한공연에서는 어떤 한국말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또한 기대된다. 참고로 조지에게 바친다는 곡은 조지 해리슨이 작곡했던 <Something>이었고, 존에게 바친다는 곡은 존 레논 사망 직후 발표한 <Here Today>였다. 나탈리 포트만과 조니 뎁이 수화를 하는 영상이 무대 뒤에 깔리는 재즈 풍의 발라드 <My Valentine>은 현재 자신의 아내인 낸시에게, 그리고 <Maybe I'm Amazed>의 경우 사망한 과거 아내 린다에게 각각 바친다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헌정하는 노래들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거기에는 슬픔이 아닌, 사랑이 있었다.



여전한 진행형의 아티스트임을 증명해낸 스테이지




2013년도에 발표한 록 앨범 [NEW]의 수록 곡들 또한 다수 연주했다. 무엇보다 작년 가을에 발매된 비디오 게임 [Destiny]의 엔딩 테마 곡인 <Hope for the Future>의 경우에는 며칠 전 오사카 공연에서 최초로 공연된 이후 이번에도 '도쿄에서 처음 선보이는 곡'이라는 소개와 함께 연주됐다. 그는 이처럼 비틀즈의 신화에 안주하지 않은 채 항상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폴 매카트니가 노래하는 배경 뒤로 우리는 몇몇 의외의 현대미술 작품들 또한 감상할 수 있었다. 'Paperback Writer'가 연주될 무렵에는 소닉 유스의 앨범 [Sonic Nurse]의 커버아트로 유명한 리차드 프린스의 현기증 나는 그림들이, 그리고 'Lovely Rita'에서는 제프 쿤스의 유명한 강아지 풍선 조형물 등이 각각 무대 뒷면을 장식했다. 이는 음악의 영역을 벗어난 다양한 종류의 미의식이 결합해낸 지점이라 말할 수 있었다.  



뜨거운 순간들


폴 매카트니는 그저 전설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현역 일선에서 활약하는 록 뮤지션이다. 그러니까 현재 록이라 불리는 모든 음악의 원형이 그의 음악 안에 있고, 심지어 이는 지금도 신선하게 다가오곤 한다. 윙스 시절을 대표하는 열정의 하드 록 넘버 <Jet>, 비틀즈 시절의 신경쇠약 직전의 하드 록 <Helter Skelter> 같은 곡들은 여전히 듣는 이로 하여금 피를 끓게 만든다. 무엇보다 한편의 블럭버스터를 방불케 하는 불 쇼가 인상적이었던 [007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곡 <Live and Let Die>에서는 불기둥의 뜨거운 온도가 관객석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심지어 밴드의 기타리스트 러스티 앤더슨은 곡을 연주하던 도중 앰프 앞에서 자빠져 나뒹굴기까지 한다. 불꽃놀이 이후 엉망이 된 무대 위에서 피아노에 기대 고개를 내젓는 노장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시대를 초월한 비틀즈 시기의 노래들


다양한 시기의 비틀즈를 아우르는 풍부한 레퍼토리가 펼쳐졌다. <Can't Buy Me Love>, <Day Tripper>, <I Saw Her Standing There> 등 초창기 시절의 경쾌함은 현대적인 소리로 재구성되어 있었고, <Blackbird>와 <The Long and Winding Road>에는 원곡을 뛰어넘는 원숙함이 있었다. <Paperback Writer>를 연주하기 이전에는 자신이 실제로 60년대에 썼던 에피폰(Epiphone) 카지노 기타를 소개하기도 했고, 장내를 담담하게 고양시켜낸 'Yesterday'에서는 그간 영상과 사진에서만 보아왔던 붉은 날개 스티커가 붙어있는 왼손잡이 에피폰 텍산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해냈다. 이 레퍼토리들에서 비틀즈 시대의 폴의 특징은 더욱 살아나 있었다. 


비틀즈의 대표 곡들 또한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복음성가처럼 숭고하게 울려 퍼졌던 <Let It Be>,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나눠 떼창시켰던 <Hey Jude>의 경우 직접 관객들을 화면에 비춰내기도 했는데 특히 노인 관객들이 이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화면으로 지켜볼 때면 왠지 모를 찡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공연 마지막을 장식하는 [Abbey Road] 메들리 <Golden Slumbers-Carry That Weight-The End>의 메들리에서는 결국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막바지에 폴이 피아노에서 기타로 이동할 때의 스릴, 그리고 세 명의 기타 연주자들이 펼치는 기타배틀 이후 불타는 석양을 배경으로 장대하게 펼쳐지는 <The End>는 직접적으로 뜨겁게 가슴에 와 닿아 울컥하게 만들었다. 



폴 매카트니의 위대한 경력을 총 망라한 라이브 퍼포먼스

순식간의 2시간 40분이었다. 균형 있는 좋은 선곡과 지나치게 탄탄한 연주, 그리고 현 시대 최고의 스탭들이 일궈낸 무대 연출은 가히 최고 수준의 쇼라 할만 했다. 게다가 폴 매카트니는 거진 40곡을 소화해내는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인터뷰에 의하면 이는 비틀즈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이라고 한다. 


평생 한가지를 순수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노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활기찰 수 있다는 어떤 격려의 감정 같은 것을 받았다. 거물급 스타의 고고함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운 재치, 그리고 서비스 정신으로 흘러 넘치는 혼신의 스테이지였다. 이 어르신은 확실히 자신의 존재가 팬들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의 눈빛과 태도에는 어떤 일관되는 다정한 감정이 엿보였다.


이런 위대한 인물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마주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슬픔이 아닌, 순수하게 감동에 의한 눈물을 흘릴 기회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폴 매카트니의 라이브가 평생에 남는 체험이 될지도 모른다. 정크 푸드 같은 여느 최신 음악에 지쳐있던 이들에게 폴 매카트니의 라이브 퍼포먼스는 5성급 레스토랑의 풀 코스와도 같은 포만감을 선사할 것이다. 


폴 매카트니, 그리고 비틀즈의 음악을 다른 각도에서 재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기존의 충실한 팬들은 물론, 폴 매카트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팬들 또한 반드시 이번 내한 공연을 찾아야만 한다. 비틀즈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옛날 음악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는 현재의 10대, 20대들 역시 충분히 동요할만한 공연이 될 것이다. 일본의 공연장에서도 어린 관객들을 비교적 자주 찾아볼 수 있었는데 폴 매카트니에게는 손자 뻘이 되는 이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폴은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다.

감히 폴 매카트니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게끔 하는 놀라운 경험이다. 심지어 이 고령의 노인에게 아직도 다음 단계가 남아있다는 생각 마저 든다. 나는 이번 도쿄 돔 공연을 보기 이전에 2년 전에 진행된 2013년도 도쿄 돔에서의 라이브 영상을 확인하고 갔다. 놀랍게도 오늘 지켜본 폴 매카트니의 모습은 오히려 2년 전보다 더욱 젊어져 있었다. 



 

Writer. 한상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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