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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McCARTNEY]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클래스의 증명, 내한공연 역사상 최대의 사건

2015.05.04



 



58년의 기다림 


새삼스런 비유지만 비틀즈의 노래들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대와도 같이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첫 내한에서 폴 매카트니는 공연을 관람하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결국 난파시켜내고야 만다. 나 역시 보는 내내 몇 번씩 무너져 내릴 뻔한 정신을 애써 고쳐 잡으려 노력했다. ‘폴 매카트니’라는 거대한 존재 그 자체의 의미,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을 지닌 명곡들이 공연장을 관통해낸 바로 그 순간, 우리들의 영혼은 위태롭게, 하지만 황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록 앨범으로는 6년 만에 발표한 2013년 작 [NEW]의 발매 이후 전개한 ‘Out There’ 투어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2013년도에 일본을 다녀갔고 아시다시피 작년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일본과 한국 공연 모두 취소되는 불상사가 있었다. 1년 후 약속대로 폴 매카트니는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 그의 공연은 건강 때문에 일정을 취소한 채 본국으로 돌아간 70대 노인의 퍼포먼스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원곡의 높은 키를 그대로 유지한다거나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던 사례들을 제외하더라도 일단은 나이를 잊게끔 하는 장난스런 제스처들이 눈에 띄었다. 연주하는 도중 발차기 동작을 시전한다거나, 손끝으로 기타를 세우는 등의 발랄한 행동들을 이어나갔다. 무대 뒤로 퇴장할 때는 카메라에 펀치를 날리기도 하면서 이 노년의 악동은 좀처럼 가만히 있으려 하지를 않았다.


아무튼 폴 매카트니는 처음 방문한 극동 아시아의 이 낯선 공간을 지배하는 데에 성공했다. 어둠이 땅에 내려앉자마자 장내에 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최고의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그의 존재감이 청중들을 압도해냈다. 지난주 일본 도쿄 돔에서 봤던 공연이 <Magical Mystery Tour>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오프닝 곡인 <Eight Days a Week>로 시작하기를 내심 바랐는데 원하는 대로 이 상쾌한 초기 비틀즈 곡으로 역사적인 폴 매카트니의 첫 내한공연의 막이 올랐다. 1964년 곡인 'Eight Days a Week'에 이어 연주된 곡은 2013년도 새 앨범에 수록된 <Save Us>였다. 이 두 곡 사이에는 무려 50년이라는 세월이 개입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다.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깨닫게 된다.



신선한 감각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신곡들 


앞서 언급한 <Save Us>를 포함해 젊은 스텝들과의 교류를 통해 완성해낸 폴 매카트니의 최신작 [NEW]의 곡들 중 다수가 무대 위에 올려졌다. 게다가 작년도에 공개된 비디오 게임 [Destiny]의 주제곡 <Hope For The Future> 같은 곡 역시 연주됐다. 심지어 한국 관객들은 신곡인 <New>에서도 합창을 했고, 폴 매카트니의 과장된 손동작과 함께 이어진 경쾌한 <Queenie Eye>에서 호응도는 절정에 달했다. 새삼스럽지만 그는 비틀즈 시절부터 최첨단의 소리를 만들어왔고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티스트였다. 비틀즈의 노래들이 현재에도 통용되는 것은 바로 당시에 이것들이 최첨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표준(Standard)'이 된다. 





사실 기본적으로 폴 매카트니의 라이브는 '동창회'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적 참신함보다는 오래된 노래를 함께 듣는 기분을 공유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노래들이 결코 오래된 레퍼토리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은 폴 매카트니라는 ‘명곡 제조기’의 위대한 경력을 생각해볼 때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라 할만하다. 



변함없이 설레는 비틀즈, 그리고 윙스 시절의 유산들 


이 72세의 거장은 업 템포의 곡에서도 뒤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호흡을 유지해내고 있었다. 빠른 템포의 초기 곡들 또한 다수 연주됐는데 이 원초적인 로큰롤이 흐를 때는 폴 매카트니는 물론 공연장내의 모든 이들이 ‘젊음’ 그 자체를 즐기고 있음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물론 연륜과 외로움 같은 감정 또한 한층 덧입혀졌고 이는 <And I Love Her> 같은 우수에 찬 노래에서 유독 두드러졌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의 곡들을 할 때는 꼭 이 앨범의 곡을 한다고 언급하고 곡을 시작했는데 앨범에 수록된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연주 시의 레이져 쇼 또한 환상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비틀즈 시기 레퍼토리들의 전반적인 사운드 톤에서는 은은하면서도 어질어질한 느낌이 엿보였다. 





비틀즈 시기 가장 거친 발성으로 노래하는 것은 단연 폴 매카트니였다. 그의 레퍼토리 중 가장 박력있고 시원한 하드 록 넘버들인 <Helter Skelter>, 그리고 윙스 시절의 <Jet>은 여전히 뜨거웠다. 마찬가지로 윙스 시기의 폭풍 같은 블루스 넘버 <Let Me Roll It>의 말미에는 지미 헨드릭스의 <Foxy Lady>를 접붙이면서 불타는 잼 연주를 이어나갔다. 이 곡이 연주될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오락가락하는 비와 상관없이 밴드는 <Band on the Run>과 함께 관객들에게 내달릴 것을 종용했다. 매 좌석마다 의자가 있었지만 관객들은 도무지 의자에 앉을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폴 매카트니를 백업하는 네 명의 멤버들은 안정된 연주를 통해 이 전설적인 곡들을 근접하게 체험시켜냈다. 백업 멤버들은 여유가 있고 자유롭되 단단하면서도 꽉찬 사운드로 이를 구현시켜냈다.



도쿄 돔 VS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일주일 전, 폴 매카트니의 일본 도쿄 돔 공연을 보고 왔기 때문에 이것저것 비교해볼 수 있었다. 셋리스트는 물론 대부분의 진행패턴은 사실 도쿄 돔 공연과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자신의 주변 인물들 각각에게 곡을 바친다는 코멘트는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소화해냈다. 폴 매카트니는 기본적인 인사 이외에도 "한국에 와서 좋아요", "한국말 해보겠습니다", "대박" 같은 의외의 한글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대신 "고마워요"라고 말한 지점에서는 어떤 세심함마저 엿보였다.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더러 있는데 <Live And Let Die> 이후 손사래를 치는 행동이라던가 <Paperback Writer>를 연주하기 이전 비틀즈 시절 사용했던 에피폰 카지노 기타를 소개하는 것, 그리고 <Yesterday> 이후 무대 뒤로 돌아가려는 폴에게 기타 테크니션이 한 곡 더하라고 손에 기타를 쥐여주는 행동 같은 것이 그랬다. 


하지만 공연장의 열기는 확실히 일본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마도 자주 방문했던 일본과는 달리 첫 내한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폴 매카트니, 그리고 비틀즈에 목말라있던 한국 팬들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심지어는 폴 매카트니가 자켓을 벗을 때에도 환호를 보냈는데 이에 대해 폴 매카트니 또한 짐짓 놀란 제스처를 취했다. 한국의 관객들은 마치 그의 마지막 내한이라도 되는 양 공연장을 불태웠다. 장내에 내린 비조차 결코 이 열기를 제압해낼 수 없었다. 참고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국어 세 마디는 이렇다. "가야 해요" "고마워요" "다시 만나요". 과연 그의 말대로 이 땅에서 폴 매카트니를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까.





폴 매카트니 라이브의 클라이맥스인 [007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곡 <Live And Let Die>에서의 불쇼의 경우에도 한국에서의 라이브가 더 볼만했다. 도쿄 돔은 천장이 막혀있기 때문에 폭약을 설치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심지어 무대 윗부분까지 폭죽을 설치해놓으면서 그야말로 제대로 된 규모의 거대 폭발 씬을 연출해냈다. 폭발과 화염으로 인한 알싸한 폭약냄새가 생생하게 장내를 감돌았다. 정갈한 일본 공연도 훌륭했지만 굳이 한 번 더 감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떼창의 순간 


무엇보다 도쿄 돔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떼창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혹시 한국 관객들의 합창 소리가 너무 커서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한국 관객들은 다수의 노래에서 떼창을 이어나가긴 했지만 적어도 경청할 때는 경청을 했다. 특히 은은한 명곡 <Blackbird>가 흐를 때는 그 누구도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친다거나 하지 않았고 LED 배경화면에 등장한 달빛 아래 운치를 즐겼다. 히트곡이긴 하지만 <Another Day> 같은 곡에서 떼창이 나오는 것도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가사를 몰라도 무심결에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이들 또한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너무나 친숙한 <Ob-La-Di, Ob-La-Da>, 그리고 핸드폰 라이트가 장내를 아름답게 비춰낸 <Let It Be>에서의 떼창 역시 인상적이었다. 떼창은 아니지만 <The Long and Winding Road> 연주 시 관객들이 일제히 머리 위로 든 하트종이의 경우 2002년 미국 공연에서 폴 매카트니를 울렸던 것만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폴 매카트니는 피아노 위에 턱을 괴고 관객들을 은은하게 쳐다봤다. 이후에는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당신들이 너무나 좋고 다음 노래를 당신들에게 바친다는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하지 않았던 말이다.


급기야는 <Hey Jude>가 연주된 이후 사상 초유의 사태가 펼쳐진다. 사실 폴 매카트니의 콘서트에 <Hey Jude>를 합창하는 것은 일종의 '약속'과도 같은 일이지만 한국 관객들은 곡의 연주가 끝나고 심지어 밴드가 퇴장했음에도 계속 곡의 마지막 후렴구를 합창해냈다. 심지어 폴 매카트니가 다시 악기를 들고 무대 위로 돌아온 후에도 합창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폴 매카트니와 밴드는 즉석에서 다시 'Hey Jude'를 반주해내면서 관객들의 흥을 이어나간다. 이런 식의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놀라운 순간만큼은 당신이 한국 팬임을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 과연 <Hey Jude>의 주인공 줄리안 레논은 극동 아시아의 4만 5천 명의 관중들이 이렇게까지 이 노래를 단체로 열창하게 될 줄 상상이나 해봤을까.


<Yesterday>는 심플한 곡의 편성과는 달리 함부로 어떻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아마도 우리는 수많은 버전으로 몇 천 번씩 이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세세한 뉘앙스로 재연되는 이 평온하면서도 슬픈 멜로디는 정말로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냈다. 과거 그의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Abbey Road] 메들리 <Golden Slumbers-Carry That Weight-The End>로 이 거대한 쇼가 마무리된다. 이 뜨거운 감정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내한공연을 매듭짓는 이 장대한 메들리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게 종결된다. "그리고 결국, 당신이 받은 사랑은 당신이 베푼 사랑과 동등하다." 이는 이번 내한 시 공연장 내부에 걸려있던 플래카드의 문구이기도 했다.



현 시대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Rock Show’


이번 내한공연은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밴드는 혼신을 다했고 폴 매카트니를 처음 본 국내 관객들 역시 최선을 다해 환호로 이를 맞이했다. 성실함, 그리고 뜨거운 메시지는 결코 퇴색되는 법이 없었다. 이만큼 충실한 70대의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머리가 숙여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라는 위치를 초월해 인생의 선배로서 더 나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 그리고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미 수천 번 들어 익숙한 노래들이지만 이는 전혀 재탕으로 들리지 않았고 회고적인 분위기에 함몰되지 않았다. 그저 이 놀라운 노래들이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을 뿐이다. 이번 내한 공연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고 이 추억은 이후 전설처럼 구전될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분과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이전에 이 노래들은 반드시 후대에 계승된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오늘 이후 잠실 주경기장을 지날 무렵 비틀즈, 혹은 폴 매카트니의 곡을 듣게 된다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질 것 같다. 이 노래들은 이미 수 십 년간 충분히 내 삶 속에 녹아있었고 지금까지의 삶의 다양한 기억과 이 노래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공연장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독 개인의 기억을 증폭, 구체화 시켜낸 공연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공연을 보는 내내 행복해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야말로 팝 음악 본연의 임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오늘은 참 이것저것 새삼스럽다. 공연을 보고 얼얼한 와중 정말로 로큰롤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Writer. 한상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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