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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라이브러리] 21세기 서울에 도착한 아날로그의 전당

2015.05.29



  

대다수가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고, MP3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90년대와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꽤나 흥미로운 시기였다. 전세계적으로 바이닐 레코드 생산이 줄어가던 때여서 헐값에 바이닐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이닐 상인들은 해외 원정을 통해 바이닐을 들여오곤 했는데 그 중에는 현지 도서관에서 다량으로 공수해온 물건들도 있었다. 이 바이닐들의 커버 뒤에는 도서관 도장이 찍혀있다거나 혹은 대여카드 같은 것이 붙어있기도 했다. 외국의 도서관에는 정말로 다양한 바이닐들이 있구나 감탄했을 그 무렵에는 10여 년 후 한국에 오직 바이닐만으로 채워진 라이브러리가 생길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뮤직 라이브러리, 현실이 되다


 

 

전세계적으로 다시 바이닐 붐이 불고 있다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바이닐로만 구성된 라이브러리가 생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탄생 자체가 도전이며 기념비적이다. 지상 2층에 위치한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1만 타이틀에 달하는 바이닐들과 장르를 불문한 악보 그리고 국내외 음악서적, 잡지, 사진집 등으로 가득하다. 롤링 스톤 매거진이 창간호부터 빠짐없이 배치되어 있다니 이 역시 또 하나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바이닐 애호가들에게는 무엇보다 뮤직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바이닐 그 자체에 빠질만하다.

 

 

말로만 듣던 전설의 컬렉션을 마주하다



  

뮤직 라이브러리에 들어서자 제이지(Jay Z)의 걸작 [The Blueprint]의 선율이 흐르다 이내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음반으로 넘어간다. 딱 두 곡만으로도 이곳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바이닐이 구비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희귀음반을 위해 해외 경매사이트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이들에겐 꿈같은 바이닐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온건한 커버를 덧대기 이전 소위 '도살자 커버' 버전으로 불리는 비틀즈(The Beatles)의 [Yesterday and Today]가 그렇고, 레플리카 재발매가 이뤄져도 여전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고가인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초기 회수된 [God Save the Queen] A&M 프로모션 프레스가 그러하다. 한때 500만원 선에서 경매가 끝났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회수되기 이전의 [Diamond Dogs] 초반 앨범, 최근 250만원 정도에 경매가 끝났지만 판매자가 원하는 가격이 아니라 낙찰이 이뤄지지 않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1집의 터키시 로고/플럼 라벨 프레스 등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컬렉션들이다.

 

 

음악의 허기를 달래주는 아날로그 아카이브



  

청음용 바이닐 섹션에서는 지금은 단종된 명기, 테크닉스 SL-1200MK 시리즈 턴테이블의 사양을 그대로 따른 파이오니아 PLX-1000 턴테이블로 원하는 바이닐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다. 록, 소울, 그리고 재즈와 힙합이 연대순으로 정리된 감상용 바이닐들의 발매 출처는 저마다 달랐다.


오리지날 프레스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프레스도 다수 보이는데, 비교적 훌륭한 퀄리티로 리프레스하는 워너 음반들과 최근 엄청난 양의 재발매 카탈로그들을 진행중인 뮤직 온 바이닐 프레스, 그리고 더 밴드(The Band)의 걸작 [Music From Big Pink]의 경우에는 고가의 MFSL 프레스로 매우 알차게 구비되어 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Electric Ladyland]의 누드커버 버전-라벨 등도 트랙이 아닌 청음용으로 따로 자리한다.


데이빗 액슬로드(David Axelrod), 짐 캐롤(Jim Carroll),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의 밴드 빅 블랙 (Big Black), 워프 레이블 카탈로그 등 의외의 바이닐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요와 월드뮤직, 레게, 사운드트랙이 구비된 3층에 오르면 더욱 흥미진진한데, 존 케이지(John Cage)부터 존 존(John Zorn), 테리 라일리(Terry Riley),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그리고 요한 요한슨(Johann Johannsson)으로 이어지는 익스페리멘탈 섹션을 보고 있자니, 이 정도면 대단한 사명감이 필요한 컬렉팅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1세기, 그것도 지나치게 디지털 의존적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토록 완벽한 아날로그 아카이브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앞으로도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테크닉스 SL-1200MK 시리즈
일본 테크닉스 사의 턴테이블 중 최고의 보급형 모델로 업계에서는 스탠다드로 자리잡고 있다.


파이오니아 PLX-1000
일본 파이오니아 사의 작년에 출시된 턴테이블로 테크닉스 SL-1200과 유사하며 바이닐을 재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MFSL
고품질 음반 전문 업체 Mobile Fidelity Sound Lab




 

Writer. 한상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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