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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대인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1_ 전통시장 리뉴얼

2015.07.21

시장에는 지역의
문화가 있다

2012년 어느 겨울 날 ‘팀 버튼 광장시장’이 포털사이트 검색 어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영화감독 팀 버튼(Tim Burton)이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마신 게 SNS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음식점 벽에 남긴 낙서도 덩달아 유명해졌지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좌판에 앉아 술 한 잔 즐기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 모양입니다.
한국을 방문한 유명인이 이제는 시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그 지역의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 역시 광장시장을 방문했고 ‘서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고 전해집니다. 번잡한 시장 골목에는 팔팔하게 살아 숨쉬는 지역 주민의 삶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시장의 가장 큰 매력은 지역 문화의 속살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체험! 삶의 현장’ 같은 생생함입니다. 또한 지역 주민에게 전통시장을 찾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통시장을 애용하는 손님들은 상인들의 정과 덤 문화를 꼽습니다. 상인과 손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대일 거래는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콩나물 500원어치를 사도 한 움큼 더 얹어 주는 넉넉한 인심은 주머니 살림이 빠듯한 주부들에게 무시 못할 매력이지요.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시장의 푸근한 분위기는 시장을 이용하는 손님에게 정서적인 안도감을 줍니다.

하지만 점점 안타깝게도 시장은 매일 이용하는 곳보다 특별한 일이 있거나, 가끔 나들이나 데이트 코스로 방문하는 추억의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편리한 시스템과 가격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지요. 또한 ‘전통’이란 단어에 매여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젊은이들에게는 호감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님은 달라지고 있는데, 시장과 상인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장을 자주 찾아오고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시장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 단순히 생산물 판매 장소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손님들이 많은 것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장은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많은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게 시장에 대한 많은 고민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바람을 몰고 온 시장들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 상인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액 카드 결제에 투덜대거나 이것저것 가격을 물으면 불친절로 일관하는 상인들은 전통시장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사는 유쾌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입니다. 즐거운 흥정과 거래가 넘실대기 위해서는 상인들 스스로 변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즐겁게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상인의 자세가 달라지면 시장의 모습, 시장의 형태, 시장의 콘텐츠 더 나아가 시장의 공기마저 사뭇 달라집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전자상거래가 가장 편리하고 흔한 결제 수단이 된 요즘. 여전히 실제 얼굴을 마주하고 물건을 주고받으며 거래하는 시장에 새 바람을 몰고 온 사례들을 살펴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들의 공통점은 상인부터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웃음을 건네는 시장 포스터,
오클랜드 시티파머스 마켓

‘절대 냉동시키지 않았음. 냉동차에서 살짝 얼었을 뿐’ 목도리를 둘러맨 당근의 솔직한 고백에 웃음이 터졌나요? 굽이 높은 부츠를 신은 토마토가 ‘토마토가 시장에 도착하기까지 소요된 거리 51마일’이라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51마일은 약 82km. 여기가 서울이라면 수도권 안에서 자란 토마토입니다. 이 재미난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2006년 뉴질랜드 오클랜드(Auckland) 지역에 문을 연 시티 파머스 마켓(City Farmer’s Market)입니다.

오클랜드 시티 파머스 마켓은 유럽에서 오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두 명의 뉴질랜드 여성 클레어 부샤난 (Clare Buchanan)과 멜리사 베이어(Melissa Bayer)에 의해 시작 되었습니다. 외롭고 적적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쉽게 구해 먹던 고향의 농산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지역민을 위한 로컬 푸드를 모은 것이 지금의 오클랜드 시티 파머스 마켓의 시초입니다.
오클랜드 시티 파머스 시장의 인기가 높아지자 시장 상인들은 시민들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클랜드 시티 파머스 마켓은 야채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의 성공 이후 또 다른 재미를 주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직접 판매하는 농산품이나 제품을 든 실제 상인을 내세운 포스터를 떠올렸습니다. ‘Local Tastes Best’. 지역 먹거리가 최고라는 사실을 상인 스스로 보증하고 있는 것이죠. 지역민을 위한 로컬 푸드를 제공하겠다는 시장의 궁극적 목표를 유머러스한 디자인으로 표현한 시티 파머스 마켓은 현재 오클랜드에서 가장 활기찬 곳입니다.

음식을 주제로 한 창조적 활동을
보여준 베를린 마크트할레 노인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트렌디하다는 도시 베를린. 베를리너들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을 때 맛집보다는 120년 역사를 가진 중앙시장 9번, 마크트할레 노인(Markthalle Neun)으로 간다고 합니다.

마크트할레 노인이 들어선 장터는 1891년 10월 1일에 문을 연 철도회관 건물입니다. 나치 집권 기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부 파괴되었던 건물은 1951년 새로이 정비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건물의 외관만 보자면 이곳이 과연 시장인가 의문이 듭니다. 허름하고 낡은 창고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은 점점 황량해졌고 어려움에 직면한 상인들은 결국 2009년 시장을 폐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크트할레 노인에 새 물결을 가져온 건 인근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이었습니다. 대형마트와 부동산 투기에 반대한 인근 주민들이 힘을 모아 2011년 마크트할레 노인이 새로 문을 열게 된 거죠. 마크트할레 노인에서 만날 수 있는 제품은 모두 베를린과 베를린 근교에서 얻을 수 있는 지역 먹거리입니다. 마크트할레 노인은 베를린 시민에게 착한 품질의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먹을 음식과 식재료의 뒷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상인이 있다는 것, 어깨너머로 조리 과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식당들이라는 것, 아이와 젊은이를 위한 다양한 요리 강습이 존재한다는 것, 마크트할레 노인은 음식을 주제로 한 창조적 활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 줍니다. 이는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시장을 다시 숨 쉬게 만들었습니다.

젊은 장사꾼을 끌어들인
전주 남부시장

전주 남부시장은 1473년 지방에서 열린 장의 맥을 이어받은 전북 지역 최대 시장이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전주 남부시장 역시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시장의 기능을 점차 상실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800여 개의 점포가 손님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매정하게 끊어졌습니다.

상인회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12년 5월 일반 점포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임대료를 받고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시장 2층을 성큼 내주었습니다. 장사가 안 돼 떠나 공터로 남았던 자리에 청년 상인들이 모여들어 ‘청년몰’을 구성했습니다. 청년 상인들은 수제 액세서리점, 빈티지 의류 판매점, 보드게임방, 멕시칸 요리점, 칵테일바 등 기존 전통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점포를 선보였습니다. 가게 특성도 면면이 흥미롭습니다. ‘만지면 사야 합니다’ ‘보이는 게 전부다’ ‘순자씨 보리밥 줘어’ 가게마다 적혀 있는 문구들은 인터넷 댓글처럼 재치 만점입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고 주장하는 이 젊은 장사꾼들은 1030세대라면 공감할 만한 B급 정서로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시장 안쪽 한 가게의 셔터문에는 ‘남부시장 전성시대’라고 옛날 극장 간판에서나 볼 법한 서체로 크게 적혀 있습니다. 시장과 관련 없다 생각한 1030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젊은 장사꾼의 감각을 끌어들인 남부시장 상인회의 변화는 다른 지역 전통시장 상인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상인의 변화가
가장 큰 원동력인 봉평장

장터를 걷다 보면 미니 간판에 적힌 상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서울은 사람들 천지, 서울청과는 채소들 천지, 서울청과’ ‘할아버지가 농사짓고 할머니가 파는 정직한 채소, 대화상회’. 중국산 농수산물이 넘쳐나 원산지에 예민 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인데, 상인들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 어느새 마음이 놓입니다.

시장 중앙에는 안내소 역할을 하는 작은 광장이 있습니다. 상인 얼굴을 스탬프화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에코백과 종이백, 기념품인 메밀주머니도 있습니다. 장터 안쪽에서는 메밀부침, 메밀씨앗호떡 같은 자체 개발한 메뉴도 판매합니다. 이곳은 메밀이 특산품인가 봅니다. 어디일까요? 교과서에도 나오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렴>의 장돌뱅이 허생원이 찾았던 봉평장입니다. 역사가 무려 400년이 넘지만, 매월 2 또는 7이 들어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여전히 장이 열립니다.
봉평장은 근래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봉평장의 변화에는 사실 업종별로 천막 색깔을 달리해 전체적인 시스템을 정비했다거나 작은 간판을 달아 상품의 이야기를 전달했다거나 같은 표면적인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보다 상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하고자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게 중요하지요. 봉평장을 리뉴얼하면서 봉평장 상인회는 3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장사해 온 상인들을 설득해 협조와 동의를 얻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현재 봉평장 상인들은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상인회 사무소에 모여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인들 스스로가 이끈 변화는 봉평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전통시장 변화의 주체는 상인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발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물론 제도적인 지원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내부에서 비롯할 때 가장 강력하게 효과를 발휘하는 법입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인이 발벗고 나서자 시장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장의 주체자인 상인이 달라지니 시장의 콘텐츠가 달라진 것이죠. 시티 파머스 마켓, 마크트할레 노인, 남부시장, 봉평장 모두 상인이 이끈 시장의 콘텐츠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로컬 푸드를 알리거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거나 젊은이의 창업을 지원하는 등 다채로운 시장의 변화는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비슷한 공간에 비슷한 상품으로 채워진 마트에서는 결코 경험하기 힘든 일이지요. 상인들이 의기투합해 이끈 시장의 변화 못지않게 상인 개개인이 이룬 상점의 변화도 중요합니다. 어떤 상점은 한 시장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상점이 되어 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시그니처 상점이 만들어낸 시장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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