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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라이브러리] 건물, 거리를 지향하고, 이미지, 사람을 품다

2015.07.22


건물,거리를지향하고
이미지,사람을품다
열린 민중의 예술 형식, 그래피티의 진화한 형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이태원에 위치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언더스테이지이다. 2015년 5월 개관한 이곳은 음반 및 관련 서적 도서관이자,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대로에 접해서 지형의 경사면을 그대로 바닥으로 수용하고, 거대한 철골빔에 쌓여 있는 독특한 형태로, 그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닿는 곳부터 건물이 시작되는 듯한 개방성이 특징이다.

JR의 사진 설치작품

건축만큼 독특한 것은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예술작품의 형식과 내용이다. 두 명의 유명 작가와 3점의 작품이 건물 내외에 설치되어 있다. 건물을 싸고 있는 철골빔 안쪽의 골진 강판을 완전히 덮고 있는 사진작품은 범상치 않은 건물의 또 다른 외관을 선사하는데, 프랑스 출신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인 JR의 작품이다. 그는 사진가 빌 오웬스(Bill Owens)가 1969년 전설적 록밴드, 롤링 스톤즈의 캘리포니아 알타몬트(Altamont) 공연에 모인 관객들을 찍은 흑백 사진을 선택했다.
빼곡히 차있는 수많은 인파 사이로, 옷을 벗은 관중 하나가 어느 누구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나아간다. 당시 전쟁을 반대하고 권위와 권력의 어떠한 억압에도 꿋꿋이 저항했던 히피들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는 사진 속 관객들은 인간 존엄의 절대성을 대표한다. 음악과 자유가 이 사진의 주제라고 판단한 JR은 건물의 성격과 어울린다고 보고, 사진을 큰 프레임에 옮겨서 설치했다.

그는 원래 파리 건물에 낙서하는 그래피티 작가로 출발했는데 이후 인물의 초상사진을 찍고 전시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작업을 바꾸었다. 주로 제3세계, 소외지역이나 분쟁지역을 찾아가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양한 이야기와 주제를 끌어내는 그는 정치적, 인종적, 경제적, 종교적 충돌과 문제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공공장소나 건물의 외벽, 지붕, 기차, 기차가 지나가는 언덕 등, 관람이 제한되지 않는 어떤 곳이라도 작품을 설치하는 그는 사진가이자 거리 예술가라 할 수 있다.

JR은 강철 빔의 큰 프레임 안쪽에 놓인 오목/볼록하게 골진 강판에 사진을 꼼꼼하게 설치하여 자칫 밋밋하고 기능적으로만 보이는 외벽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공연장에 모인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정체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뮤직 라이브러리의 울타리를 더욱 사실감 있게 만들며, 음악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려는 건물의 성격을 부각시켜준다.
JR은 늘 인간의 얼굴에 집중하면서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지역적 상황을 비틀거나 상상력을 발휘해왔다. 그는 다른 현대 미술 작가들처럼 유명인사, 대중 스타, 화려한 삶의 소유자들 대신 특별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경험과 감정을 보여주는 작은 작가들로서의 소시민들, 이름 없는 개인의 얼굴에 집중해왔고, 이점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이번 뮤직 라이브러리에 설치한 작품도 같은 맥락을 가진다. 사진을 붙인 골강판 벽이 건물의 외벽이기도, 동시에 내벽이기도 하듯 뚜렷한 경계와 명확한 개념을 강조하기보다는, 바라보는 관객들에 의해 상대적 의미를 갖는 민주적인 방식의 열린 이미지이다.

빌스와 조각적 그래피티

건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로고와도 같은 이미지를 뒤로하고 언더스테이지에 발을 들이면, 음악 공연장과 연습실을 갖춘 지하 1, 2층의 무대 뒤 벽엔 포르투갈 출신의 그래피티 작가 빌스(Vhils, 본명; 알랙산드로 파르토)의 작품이 거대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벽 위에 석고를 주재료로 한 플래스터 층을 바르고 벽을 파내는 방식으로 얼굴을 조각했다. 높은 벽을 전체 화면의 배경으로 삼고 반복적 패턴을 통해 좌우로 확장되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지하 2층에는 관객과 조응하는 강렬한 눈을 조각했다.
음각과 양각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마치 드로잉을 하듯 신속하고 유려한 선이 흐르는 개성 있는 벽 작품은 음악의 요소인 리듬, 박자, 멜로디를 시각화한 듯 보인다. 빌스는 조각이나 콜라주 기법 같은 전통적인 미술 방식에 익숙한 작가이다. 그는 런던 도심 벽면, 또는 벽돌, 문 등에 얼굴을 조각하여 널리 알려진 그래피티 작가로 2000년대 후반부터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건물 2층에는 음반과 도서의 도서관이 있는데, 이곳 ㄱ자의 벽면에 흰색이 주조를 이루는 빌스의 또 다른 작품이 있다. 스피커로 꽉 찬 벽에 잡지의 종이를 군데군데 찢어 붙여서 마치 추상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의 화면을 구사했고, 이어지는 면에는 흰 바탕에 강렬한 원색을 이용해서 도시와 인물, 주변 풍경을, 종이를 작게 잘라 붙여서 표현하는 콜라주로 장식했다.
빌스는 대중매체이자 익숙한 소재인 잡지에서 시각적으로 다양한 이미지가 재생산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음악이 여러 작품들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직접적인 멜로디, 악기 구성들을 차용하여 편집하듯 그의 작품은 기존의 이미지에서 또 다른 이미지의 생산을 구현해내고 있다.

그래피티의 21세기적 구현

빌스와 JR 모두 동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거리예술가들이다. 이들은 미술관 같은 전통적인 장소 대신, 모든 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개방된 장소와 낡고 값 없는 건물과 소재들을 배경으로 예술을 생산하고 있다. 건물 앞에 서면 2층의 빌스 작품이 유리를 통해 모두 보인다. 지하 공연장의 작품을 제외하면 건물 내부와 피부와도 같은 지점에 표현된 사진작품은 거의 다 노출되어 관람할 수 있다.

이들은 예술이 사회적 공유물이자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원래 그래피티는 공공장소에 그려진 반항적이고도 자유로운 이미지나 글자를 말하는데, 아마추어 작가나 청소년들이 스프레이 등으로 그리던 낙서에 가까운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발생한 그래피티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공공예술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익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에 의해 구현되던 그래피티가 예술로 인정된 계기는 팝아트 유행 이후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 같은 작가들이 지하철역부터 거리 벽까지 작품을 그리면서부터이다. 이후 영국의 뱅크시는 이를 고급미술, 전통미술에 대한 대항마로 간주하고, 풍자와 유머가 담긴 비판적 작품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얻어내었고, 2000년 이후 예술의 경계를 자극하
는 장르가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그래피티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변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JR, 빌스의 작품이 그래피티의 전형성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예술방식이 확고해지면서 훨씬 더 정교하거나 건축적이며, 대규모 작품들을 시도하고, 낙서보다는 조각, 사진, 콜라주 등의 여러 매체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작품은 그래피티의 정신을 유산으로 가져와서 공동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개방된 의미의 공간으로 건물 안팎을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주목 받아야 한다.

그래피티의 밝고 경쾌하며 독특한 표현방식은 건물이 위치한 이태원의 물리적, 문화적 환경과도 적절한 관계를 맺지만, 건물이 지향하는 열린 개념과도 조화를 이룬다. JR과 빌스는 다양한 동시대 문화적 산물들을 적극적으로 발견, 채택하고 다시 재생산하는 방식을 통해 고가의 권위적인 소재 대신, 일상적이고 값싼 재료와 매체를 활용해 동시대의 느낌을 표현해주었다. 그들의 작업 안에 깃든 친근함은 예술의 가장 오래된 아름다움, 사람을 지향하고 공동체의 소통의 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체의 본질과 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고 하겠다.

 

 


 

Writer.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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