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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라이브러리] 현실을 마주하는 예술, 데이터 시각화

2015.11.04

 

신(新) 사실주의, 데이터


미술에서 사실주의(Realism)는 "현실을 존중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예술 제작의 태도 또는 방법"을 의미한다. 감정적 해석이 중요한 낭만주의와 달리 사실주의 예술가들은 객관적 묘사를 통해 시대를 기록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오래 전,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작가의 주관적 해석보다 평범한 삶 자체의 객관적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시도했던 사실주의. 사진 매체를 거쳐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재, 과연 어떻게 진화되었을까?


구글 검색 결과가 보여주는 오늘의 주요 관심사,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일상의 대화, 신용 카드 사용량이 보여주는 나의 소비 생활 등 이 시대의 데이터는 신(新) 사실주의가 되어 우리의 현재를 대변하고 있다. 다만 기존 사실주의적 표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데이터는 눈에 보이는 현실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현실까지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좌] 쿠르베의 사실주의 회화, “돌깨는 농부" (1849)

*[우] Chrome Experiments 프로젝트, “1992년 ~ 2010년 까지 전 세계 무기 무역 데이터 시각화" 

텍스트와 숫자로 형성되어있는 데이터를 시각화함으로써 무기무역의 현실을 묘사한다.



데이터 시각화, 시각적 데이터?


데이터란 정보화가 되기 이전의 자료 형태를 말한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삶을 데이터화해 텍스트, 숫자, 그림으로 기록해 왔지만,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서는 다양한 시스템을 통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나눈 친구와의 대화에서 일상의 관심사를 저장하고 출퇴근 교통카드 이용 기록에 따라 개인 혹은 집단의 생활패턴을 기록하는 것처럼 말이다.



* 엑셀 파일로 기록된 데이터의 형태.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나의 위치 이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있다. (출처: 랜덤웍스)



이러한 시각적 데이터는 주관적 감정 프레임과 비현실적 장치를 최대한 걷어내고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Open API, public data, 웨어러블 기기, 비디오 카메라 분석 등 데이터 수집의 형태와 방법까지 매우 다양해져 이젠 데이터를 재료 삼아 현실을 아주 객관적이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됐다.



* MIT 센서블 시티 랩에서는 2011년 부활절 기간 동안 스페인의 마트에서 일어난 소비 데이터를 시각화했다.(출처: Youtube)



* 히로시 코이 (Hirosh Koi)는 Metrogram 3D라는 작업을 통해 도쿄 지하철 라인의 실시간 움직임을 시각화했다.(출처: Chrome Experiments)



날 것 그대로의 현실, 데이터 시각화


데이터 시각화는 때론 반갑지 않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데이터로 산출해낸 결과에 대해 이미 특정한 기대치가 있는 상태에서 시각화에 접근한다면 예상 외의 결과와 맞닥뜨릴지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것 위주로, 이해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인간이기에, 현실과 데이터의 괴리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데이터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불편한 것과 미처 몰랐던 것,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 매우 일상적인 부분 등 모든 것이 공존하는 시각적 환경이다.


하지만 사실주의가 내세우는 것처럼 아름다움이란 고상한 것, 고귀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며, 현실을 미화시키거나 이상화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데이터를 시각화 한 결과물이 우리의 예상과 다를지라도, 능동적이고 유동적인 시각환경을 만들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 랜덤웍스는 2014년 “서울시 재정 정보 시각화 서울시가 하는 일들"을 통해 

서울시가 하고 있는 사업들과 예산 사용에 대한 데이터를 시민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예술, 한국의 데이터 시각화 그리고 인포그래픽


한국의 데이터 시각화는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정부 차원에서 데이터를 공유하는 움직임이라던가 산업계에서의 데이터 분석은 활성화된 편이지만, 데이터 시각화에 관한 접근은 생각보다 미미한 실정이다. 이에 비해 인포그래픽스만큼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인포그래픽스는 이미 해석된 내용, 즉 정보화된 내용을 보여주는 통제 가능한 시각적 결과물인 반면 데이터 시각화는 정보화 작업 전 날것의 데이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통제가 어렵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인포그래픽스의 경우, 바이스버사 디자인 스튜디오, 뉴로 어소시에이츠가 정부와 기업 데이터를 활용하여 온·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좌] 바이스버사의 굿 네이버스 2014년도 사업계획과 예산 관련 인포그래픽스

* [우] 뉴로어소시에이츠의 서울시 농수산물 물가 정보 비교 서비스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한국현대사 인포그래픽> 역시 복잡한 한국 현대사를 그래픽화 하여 한눈에 보기 쉽게 구현하고 있다.


*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한국현대사 인포그래픽"

 


데이터 시각화는 객관적 시각을 대변한다는 장점이 ‘데이터 저널리즘’이라는 분야로 확대되어 언론매체에서도 많이 활용하는 추세인데, 한국에서는 연합뉴스, 경향신문이 다양한 뉴스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데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의 실시간 뉴스맵



* 경향신문의 대한민국 정당사에 관한 인포그래픽



데이터 저널리즘, 인포그래픽스와는 달리 데이터 자체의 미학과 시각화의 영향, 그리고 창작자로서 사회적 참여를 실험하는 랜덤웍스와 옵티컬 레이스의 작업은 디자인, 예술, 정보전달 그 사이 경계에 위치한다. 그들의 작업은 사용자(혹은 관람자)가 참여하여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환경을 온라인 서비스, 프린트, 설치 그리고 전시 등 다양한 매체의 형태로 제공한다.



* 랜덤웍스는 "data can be visual. (데이터는 보인다)" 을 통해 2010~2012년까지 모바일 데이터 사용 증가가 만들어내는 통신망 트래픽 변화를 시각화했다.

 


* 옵티컬 레이스는 "확률가족"이라는 설치작업을 통해 연봉, 대출금액, 부모의 자산 등 자신의 재정능력에 따라 살 수 있는 집을 경험하도록 했다.



끝으로, 데이터 시각화 작업을 하는 창작자(디자이너)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선입견을 갖게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시각화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이 전부는 아니므로, 잘못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객관성을 갖고 작업하고자 노력해도 한 인간으로서 창작자의 주관적 해석과 표현이 전혀 배제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객관성과 주관적 해석 간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Writer. 민세희
랜덤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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