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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뮤직] 2013년 하반기 국내 인디뮤직 결산

2013.12.30

 

돌이켜보면 2013년의 인디 씬에 ‘혁신’이나 ‘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올해의 좋은 음반들은 지난해의 연장선상에서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채로운 색깔을 선보였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그게 올해의 인디 씬이 지리멸렬했다는 뜻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혁신이나 진화가 ‘새것’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나 장사꾼, 또는 둘 다인 사람들이 지나치게 착취하는 단어이기도 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혁신이나 진화가 ‘단숨에’ 혹은 ‘혁명적으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혁명적인 무언가가 벌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현상이 가능한 ‘토대’가 튼튼히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올해의 인디 씬 역시 튼튼하고 강건하게 자신들을 내보였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기여했다고 생각되는 음반들을 (가나다순으로) 골라 보았다.

 

 

강아솔 “정직한 마음”

 

 

 

 

제주 출신의 싱어 송 라이터 강아솔의 두 번째 음반이다. 데뷔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2012)의 여운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정직한 마음”이라는 새 음반의 제목은 포크 음악이 갖고 있는 ‘내밀함(혹은 친밀함)’과 ‘고백적’인 성격을 특히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종류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외유내강’형의 단어들과 가사들이 곳곳에 자잘하게 흩어져 있는데 관조적이지만 방관자 같지는 않다. 데뷔작에 비해 소릿결도 비교적 풍성해지고, 낮고 느릿하게 시종하던 전작에 비해 경쾌한 템포로 노래하거나(‘끝나지 않을 이야기’) ‘재지’한 소리도 집어넣는 등(‘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이런저런 스타일을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소화하려고 한 노력도 눈에 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음반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마음 놓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분노, 냉소, 환멸을 넉넉히 끌어안은 채 사람과 세상에 대해 따뜻하고 단단한 신뢰를 드러내면서도 순진한 낙관이나 얄팍한 타협에 빠지지 않는 포크 송 음반이다.

 


 

그레이(Graye) “Mon”

 

 

 

 

그레이는 군산 출신의 일렉트로닉 뮤지션이다. 언뜻 보기에 ‘군산’과 ‘일렉트로닉’이 같이 등장하는 이런 설명이 어색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네트 안에서 사람들은 종종 같은 꿈을 꾸고, 일렉트로닉 음악 역시 그렇다. 이후 ‘상경’하여 가진 몇 번의 공연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그 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모은 첫 번째 음반이 바로 이 데뷔작이다. 이른바 ‘비트 뮤직’에 속하는 그레이의 음악은 꾹꾹 눌러 문지르는 비트, 건조하지만 효과적으로 쌓은 레이어, 칩튠으로 노래하는 나긋나긋한 멜로디, 침착한 진행이 돋보이는 음악으로, 첫 트랙 ‘D`Mon’은 그레이의 그런 특징을 적절하게 압축해서 드러낸 곡이다.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단순하지만 만만치 않은 재미가 있는 사운드 레이어가 돋보이며, 흥미로운 반전이 이어지는 ‘A`Mon’ 역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음반 전체가 ‘싸늘한 멜랑꼴리’라 표현해도 좋을 무드로 조율되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다시 듣고 싶어지는 소리들을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장점이 앞으로 어떤 방향과 색깔로 자라날지 궁금하다.

 


 

글렌체크 “YOUTH!”

 

 

 

 

글렌체크는 이미 씬 안에서는 ‘스타급’에 속하는 뮤지션이다. 많은 호응을 얻었던 정규 데뷔작 “Haute Couture”(2012)에 이어 발표된 두 번째 음반은 그 동안 달라진 글렌체크의 위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각기 다른 음악적 개성을 선보이는 ‘더블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음반을 녹음하는 과정에서도 음악뿐 아니라 그에 따른 ‘패션 아이템’까지 제작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Haute Couture”가 비교적 ‘직선적’인 소리를 담고 있었다면 밴드의 신작은 전반적으로 다채로운 소리들을 담고 있으며, ‘노래’와 ‘훅’의 안배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화사해졌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니 피닉스나 저스티스 등 인접 분야의 아티스트도 종종 떠오르게 되는데,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가져왔다기보다는 어떤 ‘흐름’ 내지는 경향에 속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물론 이 깔끔하게 마감된 젊고 화사한 음악을 듣다 보면 데뷔작의 단순명료한 에너지가 이따금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뮤지션의 욕심 역시 흥미롭고 즐겁다.

 


 

들국화 “들국화”

 

 

 

 

들국화를 ‘인디’라는 범주에 넣기는 어색한 게 사실이다. 장르나 스타일, 씬과 같은 ‘세속적’ 구분을 뛰어넘은 걸작을 남긴 밴드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어떤 방식으로건 몇 번이고 소개할 가치가 있다. 27년 만에 주요 멤버 세 명(전인권, 최성원, 주찬권)이 모여 녹음한 이 음반은 주찬권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밴드의 마지막 음반이 됐고, 음반의 빼어난 완성도 때문에 그에 대한 아쉬움이 깊어진다. 음반을 통해 공개된 다섯 곡의 신곡은 그간의 세월 동안 이 뮤지션들이 거친 풍상과 그에 따른 회한, 그러면서도 끝내 유지한 관조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태도를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행진’의 답가처럼 들리는 ‘걷고 걷고’는 오래 기억될 곡이다. 옛 들국화, 전인권, 최성원의 솔로를 새로 녹음한 버전들은 깊고 풍부한 뉘앙스로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진정한 음악’이니 ‘거장들의 귀환’이니 하는 말로 수식할 필요가 없다. 여기 담긴 음반은 그냥 좋은 음악이다.  

 


 

로큰롤라디오 “Shut Up And Dance”

 

 

 

 

‘신인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진부한 만큼이나 딱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 올 하반기 이 진부한 표현에 생기를 불어넣은 밴드라면 아마도 로큰롤 라디오일 것이다. 음반 발표 전부터 홍대 씬에서 열정적인 공연으로 명성을 떨쳤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에 선정되고 EBS ‘헬로루키’ 대상까지 수상하며 될성부른 떡잎으로 일찌감치 점쳐졌다. 이후 공개된 이 데뷔작은 가장 모범적인 의미에서의 ‘데뷔 음반’이라 할 만하다. 열 네 곡을 빼곡하게 채운 이 음반은 날렵하고 날카로우며 신선한 기운이 물씬 넘치는 로큰롤 음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들어도 데뷔작이라는 걸 알아챌 정도의 에너지로 청자를 몰아붙이는데, 라이브에서 쌓은 ‘케미스트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좋은 예일 것이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달리는 것까지도, 군데군데 살짝 허술한 부분마저 나름의 매력으로 보이는 순간들도 모두 그렇다. 두 번째 음반이 벌써 기대되는 밴드들 중 하나다. 로큰롤라디오는 현대카드 뮤직의 '아티스트 줌인'을 통해 그들의 첫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데뷔 앨범 타이틀곡인 "Shut Up And Dance'가 그것으로, 곡명에 걸맞는 댄서블하고 funky한 분위기의 영상이 인상적이다.

 


 

프롬 “Arrival”

 

 

 

 

부산 출신의 싱어 송 라이터 프롬은 2011년 싱글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이다. 2012년 헬로 루키에 선정되면서 대중에게 좀 더 알려지게 됐지만 아무래도 이 뮤지션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건 첫 정규 음반을 발표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커버를 장식하고 있는 눈이 반짝 뜨이는 외모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이미 예전부터 말이 나왔어야 했을 테니 음악 때문이라 보는 게 더 옳아 보인다. 프롬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영미-여성-인디-팝’이라 부를 수 있는 범주에 속하는 소리를 들려주는데, 본인이 언급했다는 파이스트(Feist)뿐만 아니라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나 케이트 내쉬(Kate Nash), 더 나가서는 케이티 턴스털(KT Tunstall) 등을 같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독특한 중저음의 보컬 음색 때문에 더 그렇게 들리는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고른 완성도를 보이며, 몇몇 부분에서는 좀 더 과감하게 나갔다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도 있다. 로큰롤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지금보다, 혹은 지금만큼이나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음악을 들려준다. 더불어 현대카드 뮤직이 인디뮤직 트랙들을 엄선하여 분기별로 발매하는 인디 컴필레이션 앨범인 'it track vol.4'에 그녀의 곡, '달 말하다'가 세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Writer. 최민우

 

대중음악 평론가

2002년부터 음악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인디뮤직을 말하다] 2013년 하반기 해외 인디뮤직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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