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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뮤직] 2013년 하반기 해외 인디뮤직 결산

2013.12.31

 

지난 10년간 특별한 경향으로 요약하기 힘든 음악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2013년을 정리하면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일렉트로닉 레코드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장르가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오늘날의 음악계에서 전자음악 장비들은 음악가들이 많은 실험을 행할 수 있는 일종의 실험실을 제공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 어느 때보다 소울/펑크, 그리고 신시사이저로 대변되는 80년대의 음악 요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이 음악들의 양이 많았다기보다는, 이런 요소들을 장착한 음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해라고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장르를 탈피한 음악가들의 음악이 흑인 음악과 전자 음악 사이 그 어딘가에서 헤쳐 모이는 것과도 같은 형국이다.

 

 

Forest Swords “Engravings”

 

포레스트 스워즈, 즉 매튜 반스는 2010년에 성공적인 데뷔 EP를 발표하고 음악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청각장애를 앓았다. 그 과정 때문인지 새로운 앨범의 사운드는 더욱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마이너 키로 가득한 앨범 안에는 동양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보컬 샘플링이 신비감을 안고 등장하기도 하고, 불길한 징조가 가득한 기타 솔로가 울려 퍼지기도 한다. 어둡지만 풍성하고, 낯설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이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덥 음악은 대단히 유기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야외에서 진행한 앨범 믹싱, 그리고 끊임 없이 잔향을 만들어 내는 소리의 겹들은 마치 이 전자음이 그 어떤 자연에서 만들어진 것과 같은 착각마저 안겨다 준다.

 

소리들은 때때로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예를 들어, 제목과 인트로에서 서부영화를 연상케 하는 'The Weight Of Gold'의 리듬 뒤로 아련하게 울러 퍼지는 (그 시절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를 만날 수 있기도 하다. 앨범은 안개 속에, 혹은 깊은 숲 속에 파묻혀 인식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많은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는데, 그 이미지는 어젯밤 꿈에 나왔던 알 수 없는 장소처럼 명확하지는 않지만, 꿈에서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매혹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우리 시대에서 만날 수 있는 진보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의 최전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Blood Orange “Cupid Deluxe”

 

앨범 커버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좋은 작품이다. 한 때 라잇스피드 챔피언(Lightspeed Champion) 이었던 데브 하인스는 블러드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고도 성공적으로 진화했음을 명확히 알림과 동시에, 근래 프랭크 오션이나 올해 다프트 펑크에 대해 흥분했던 그 감정들을 모두 흡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장점이 많은 신작을 발표했다. 펑크와 재즈,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은 잘 들리는 보컬 멜로디와 감성적인 가사 안에서 우아하게 지분을 나눠 갖는다. 보컬이 앨범을 이끌어 가는 주된 요소지만, 우리가(혹은 음악 매체들이) 한 때 칠웨이브라 이름 짓기도 했던 80년대스러운 바이브, 슬랩 베이스와 신시사이저의 라인, 스무드 재즈에 등장할 것 같은 관악 연주 같은 요소들이 앨범의 성격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형태의 퓨전은 분명 우리 시대 인디 음악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이기도 하며, 이 작품은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Julia Holter “Loud City Song”

 

풀 밴드를 대동하고 등장한 줄리아 홀터의 신작은 그녀의 이름 뒤에 가끔 붙는 아방가르드라는 단어에 겁을 먹은 사람들의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하기 쉬운 작품이다. 'In The Green Wild'에서 더블 베이스 위에 밝게 겹쳐지는 그녀의 보컬이나 시종일관 마음 속 깊은 감정들을 건드리는 'Hello Stranger'의 섬세함(이 곡은 커버곡이다.)은 그녀가 도시의 사운드('Loud City Song')를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디자인했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수록곡들은 음악적으로 큰 개연성을 지니지 않지만, 각각의 곡들 안에서 완결되는 구조와 감정들이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흐름과 닮아 있기도 하다.

 

 

 

 

DJ Rashad “Double Cup”

 

시카고 출신 디제이의 정규 데뷔 음반(실은 다섯 번째 앨범이지만 음반의 형태로는 처음이다. 사실 이런 걸 따지는 것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놀라움의 연속이다. 장르를 따지거나 굳이 이앨범을 장르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굳이 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시카고 하우스/ 시카고 풋워크를 흔히 언급하지만 이 앨범은 시카고가 런던과 만나고, 다시 동시대의 갖가지 리듬과 샘플링, 게스트들을 만나면서 그저 디제이 라샤드의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격의 작품으로 완결되었다. 이 앨범의 주인공은 게스트들을 포함한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예컨대 다양한 재료들이 잡탕이 되어 맛을 알 수 없는 요리가 되지 않고 대단히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작품이 되는 모범적 형태를 만들 줄 아는 챔피언에 가깝다. 신시사이저와 관악기(샘플), 그리고 R&B 보컬 등이 합쳐진 동시대 우리 음악의 청사진을 보는 것 같다. 혁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끊임 없이 진행되고 있다.

 

 

 

 

Cate Le Bon “Mug Museum”

 

세 번째 앨범을 발표했지만,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싱어송라이터를 한 명 소개하고자 한다. 웨일스 출신의 이 음악가는 빈티지 악기와 포크의 음악적 요소들을 훌륭하게 모아 놓은 신작을 지난 가을에 내놓았다. 올해에도 어김 없이 등장한 수많은 팝/포크 성향의 앨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와 멜로디, 편곡으로 녹음된 작품 중 하나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퍼퓸 지니어스와 함께 한 'I Think I Knew' 같은 곡들은 내년 이맘때까지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곡이고, "Are You With Me Now?"라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을 정도로 따뜻한 음악이 반복된다. 그녀에겐 큰 이정표가 될만한 작품이다.

 

 

 

 

Thundercat “Apocalypse”

 

베이스 연주의 달인이면서 노래도 하고, 곡도 잘 만드는 스테픈 브루너의 다른 이름은 썬더캣이다. 레이블의 사장님이자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올 여름 두번째 앨범을 발표했는데,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 오스틴 페랄타를 추모하는 분위기와 상실감을 담은 가사가 가끔 숙연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으나 펑크(Funk) 성향의 리듬감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확대되어 예컨대 디스코를 테마로 만들어진 다프트 펑크 신작 이상의 율동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Heartbreaks + Setbacks', 'Oh Sheit It’s X' 같은 곡들에서 만날 수 있는 선율과 리듬의 어울림은 그야말로 절차탁마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인공 감미료 맛이 덜한, 천연 재료 함량이 높은 일렉트로닉 소울/펑크 앨범이다.

 

 

 

 

Eleanor Friedberger “Personal Record”

 

음악이 지금보다 더욱 크고 중요한 비중을 맡았던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앨범으로 Fiery Furnaces에서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던 엘레너 프리드버거는 두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전작보다 사람들을 향한 문을 조금 더 열어둔 느낌이다. 이를테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추억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사랑에 관한 가사, 그 어느 때보다 쉬운 멜로디,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복고적인 편곡… “개인적인 레코드”는 단지 엘레너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감정 안에서 각자의 개인적인 레코드로 자리 잡을 수 있게끔 해준다. 마치 좋은 곡만 골라 선곡해주는 라디오를 듣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Speedy Ortiz “Major Arcana”

 

페이브먼트와 소닉 유스가 맹렬하게 활동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밴드. (실제로 리드 보컬리스트/기타리스트인 새디 더푸이스는 페이브먼트 곡을 커버하는 밴드를 했었다고 한다.) 모호하기도 하고 때론 흥미롭기도 한 가사 역시 에너지 충만했던 90년대의 인디 록 음악계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저 그 시절의 영향력 안에서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되풀이되는 분노 거리들, 현재의 젊음들이 여전히 갖고 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음악 안에 풀어낸다. 앨범을 대표하는 “No Below”처럼 사운드는 솔직하고, 표현에는 거침이 없는 작품이다.

 

 

 

 

Pure Bathing Culture “Moon Tides”

 

이 앨범을 흔히 쓰는 ‘드림팝’의 테두리 안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신시사이저의 흐름은 때때로 80년대의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Vetiver의 일원이기도 한 기타리스트 다니엘과 키보드 연주자 사라 두 사람의 듀엣 작품은 중간 템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팝음악을 선보이며, 기타 라인과 신시사이저의 멜로디, 드럼 머쉰만으로도 풍성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영화의 플래시백과도 같은 순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달아 진행되는 느낌의 앨범인데, 그 일관성에는 흐트러짐이 없어서 첫 곡 'Pendulum'부터 끝 곡 'Temples of the Moon'까지 계속해서 꿈을 꾸는 느낌이다. 그래서 ‘드림팝’이 되는 것이겠지만.

 

 

 

 

Wooden Shjips “Back To Land”

 

그냥 “우든 쉽스”라고 읽으면 되는 밴드 이름이지만 ‘j’가 중간에 들어간 것이 뭔가 범상치가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우연이겠지만 이름과 성이 모두 J로 시작하는 영화감독 짐 자무시는 그가 큐레이팅한 ATP 뉴욕 페스티벌에 이들을 초청하기도 했었다.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이 싸이키델릭 밴드는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밴드 테임 임팔라(Tame Impala)가 그러하듯이 60/70년대 록에 기반을 두고 약간의 변화와 디테일을 추가하며 성장하고 있는데, 여전히 구조나 코드의 간결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변화가 없겠다. 'Servants'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대는 곡을 높은 볼륨으로 듣게 되면 압도 당하기 쉬운데, 이 튼튼한 집의 골격을 살펴보면 이들이 미니멀리스트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Oneohtrix Point Never “R Plus Seven”

 

일렉트로닉 음악은 몸을 흔들 수 있는 즐거움도 제공할 수 있지만, 새로운 사운드 경험을 제공하는 일종의 감상용 음악이 되기도 한다. 후자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주는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새 앨범은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다. 앨범은 모노톤에 가깝지만 실로 다채로운 색깔이 앨범 안에 어우러져 있으며, 실제 사람의 목소리는 거의 없지만 많은 감정들을 안겨다 준다. 표면적으로는 이 불규칙적으로 진행되는 사운드에 연결 고리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심층에는 80년대 팝음악에서 가져온 요소들과 그 어떤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치 스릴러처럼 후반부 - “Still Life”나 “Chrome Country” 등- 에서 사운드가 주는 감정과 느낌이 좀 더 선명해지며, 뉘앙스는 극대화된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퍼즐을 맞춰야 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순간처럼 이 음악의 순간순간을 느끼면 될 것이다. 즉각적으로 뇌리에 남는 사운드는 아니지만, 즐기기 충분할 정도의 환상적인 사운드로 앨범이 채워져 있다.

 

 

 

 



Writer. 김영혁

 

회사원 자격으로 음반을 소개하는 일을 꽤 오랫동안 했다. 레코드를 좋아해서 레코드페어를 시작했고,

공연을 좋아해서 공연 기획을 시작했으며,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서 오래 다니던 회사를 관뒀으나 여전히 중심은 음악이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지만 유일한 저서는 부업인 까페창업에 관한 것이다.

 

 


[인디뮤직을 말하다] 2013년 하반기 국내 인디뮤직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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